며칠 전에 읽었던 사진예술 3월호 독자 콘테스트에 누군가 사진과 함께 덧붙인 글이 있었다. 자신은 학생이지만 전공과 다르게 사진을 좋아한다고 그런데 자신이 아는 한 선배가 "어느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냥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라는 얘기를 듣고 용기를 내어 독자 콘테스트에 사진을 보낸다고 했었다. 최고. 어쩌면 나도 그냥 글을 좋아하는 사람 그냥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그냥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최고가 된다는 것은 남을 이기기 위한 남보다 월등하기 위한 이라는 자본주의적 논리가 적용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최고라는 것은 내 마음에 가장 완벽하게 와닿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내 마음 속 한구석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용기가 정말이지 내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정말이지 좋은 선배가 있구나 라는 생각도. 며칠 전 아카데미 오스카상을 보고 공로상을 수상한 감독 로버트 알트만의 얘기를 듣고 이야 정말이지 뛰어난 감독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설자로부터 그 감독이 할리우드에서는 아주 편견적으로 싫어하는 감독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감독이 이런 말을 한다. "영화는 모래성이다. 가족들이 해변가에 앉아 모래로 성을 만들고 얼마지 않아 파도가 밀려와서 모래성이 사라지지만 그 모래성은 그 가족들의 마음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라고 모래성. 영화는 그 감독의 말대로 모래성이다. 그렇다면 글은 그렇다면 詩는 詩 역시 모래성일까 그 생각을 한참이나 했었다. 며칠전 모 신문에 실린 한국종합예술대학교의 총장 황지우(본명 황재우)씨의 인터뷰 글에 그는 "글을 구걸해서는 안된다." 라고 얘기 하더라. 그리고 글이 살아남기 위해 구걸은 아니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나는 지금 글을 구걸하는 것일까 대중들에게 물론 글이 대중들에게 구걸되어서는 안된다. 구걸이 되면 그 글은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족쇄를 차게 되는... 그렇다면 글이 살아남을려면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본다. 역사의 왜곡 속에 역사의 오랜 투쟁 세상에는 세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지배자 지배받는 자 그리고 진보한 자 누구를 위한 글이 되어야하는가? 라는 진부한 물음을 떠나야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내가 즐거워야하고 그리고 현실을 적확히 직시해야하고 그 다음이 기다림인 듯 하다. 아마도 한 백년은 기다려야하지 않을까? |
2006/03/07 15: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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