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라이더의 일지 9
어느 라이더의 일지 9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오전 9시 반에 첫 배차를 받고 꿈에 부풀어 달리기 시작하였다.
사실, 지금까지 이렇게 일찍 나와서 배달을 한 적이 다섯손가락 안에 들기때문이었다.
준공무원 지역에 배달을 갔었는데 '전화 주시면 마중 나갈게요' 해서 1층 로비 문앞에서
전화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문을 밀고 나오려는 그녀를 보고 빨리 가져다줘야지라며
설레발을 친게 악수였다. 배달통을 열고 음식을 꺼내들고 그렇게 설레발로 디딘발이 아! 글쎄
2cm가량 솟은 연석에 그대로 걸려 앞으로 고꾸라진 것이었다. 그녀는 투명한 유리문에서부터
문을 열고 나오기까지 내가 슬라이딩하는 장면을 직관했을 것이다. 넘어지는 순간에 오른손에
음식과 음료, 왼손엔 직업상 뗄래야 뗄 수 없는 휴대폰 그 찰나의 선택은 몸뚱이로 슬라이딩이었다.
그렇게 자빠지고 그녀는 괜찮으세요 라며 연신 물어대고 난 네 괜찮아요 라며 연신 답하면서도
설마 커피가 쏟아지진 않았겠지 라며 전두엽 한구석에선 요동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커피는
잘 계셨다. 그렇게 커피는 쏟아지지 않았네요 하면서 음식을 건네고 다음 픽업지로 향했었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고객이 남자였다면 그렇게 설레발이치면서
연석에 걸려 자빠졌을까? 수컷 본능!
출구 차단봉이 길어 그 아파트를 갔을 때는 매번 인도를 타고 나왔었는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그 좁은 차단봉 사이를 비집고 나왔었다. 조금 고바위 진 출입구로 스로틀을 당기면서
올라오는데 뭔가 잘 안올라가는 느낌이 들어보니 차단봉이 배달통에 걸려 있는게 아닌가. 아놔!
오토바이를 후진하면서 차단봉은 심하게 휘어져있는게 눈에 보이고 아주 찰나에 걍 튀어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내가 한 일은 내가 책임져야한다는 알지못할 우직함에 경비실 창문을 열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연락처를 드렸었다. 경비 아저씨 왈
'그래도 이렇게 얘기해주니 좋네요. 안그러면 cctv 다 확인해야되고...'
그렇게 다시 픽업지를 향해 달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왠간하면 모르는 전화번호는 안받는데 오늘 한 일이 있어서 전화를 받았더만 경비실에서 온
전화였다. 차단봉이 한번은 잘라서 쓸 수 있어서 택배비랑 해서 14만원 나왔는데 반만
입금해달라는 연락이었다. 이래저래 알아보니 50만원까지도 나올 수 있다고 해서
로또 사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감사한 일이. 그렇게 감사합니다 전화 준 분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서로 감사하게 사고 친 일이 잘 마무리 되었다.
또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열리지 않는 차단봉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서
한번이라도 사이러 미러를 보면서 후방을 주시했는가? 라며 나에게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좁은 곳을 갈 때는꼭 전방과 사이드 미러를 번갈아 보며 전후방을 주시하면서 서행하자!
미드 '성난 사람들(Beef)' 마냥 다짜고짜 남탓네탓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