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그린피스와 5일째

황새울 2006. 7. 4. 14:14
05.05.14 오후에 고래대사관에 가려면 오전에 서둘러서 도서관에 가야만 했다. 다행히 밤잠을 설쳤는데도 그나마 일찍 일어났다. 요즘 생각이 부쩍 더 늘어서인지 잠이 잘 안온다. 머리 속에 과다한 트래픽이 발생하고 있는 듯 하다. 되도록 생각을 줄여야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질주를 시작하면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대충 그렇게 아침겸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반납할 책들을 가방에 넣어 도서관으로 향한다. 날이 덥다. "루카치의 미학", "파워프레젠테이션", "샌드위치" 라는 책을 반납한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요리책은 잘 빌려오지 않았는데 올해부터인가 요리책을 자주 빌려온다. 빌려오는 책들을 채 읽지도 못하고 책 제목만 수십번 보는 경우가 많은지라 그림 많고 글자 적은 책을 한권씩 덤으로 빌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행여 책 내용이라도 보게 되면 읽는 책들이란게 어느 누구도 잘 읽지 않는 고리타분한 책인지라 머리도 식힐겸 요리책을 덤으로 빌려온다. 요리책도 재미있더라. 요리도 창조...흠...정확하게 예술적 창조라고 보기는 힘들겠지만 어쨌든 두손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림이 많아서 좋다. 형형색색이니...ㅋ 요리책하니 생각나는 사건이 하나 있다. 몇권의 요리책을 빌려오고 곰곰히 보니 부대찌개가 빠지지 않지 않든가 인간이란게 그렇듯이 자꾸보면 먹고 싶잖아 그때 빌려온 요리책의 제목이 "2000원으로 밥상차리기" 였든가 "3000원으로 밥상차리기" 였든가 두권이었든가...흠...그 책들의 가장 큰 주제는 값싸게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주제에 충실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한푼두푼 모은 돈을 요리에 과감한 투자를 하기로 하였다. 팽이버섯, 햄, 비엔나 쏘세지 이렇게 주소제를 쌌다. 싼 후에 후회했다. 거금 5000원이나 들어가는게 아닌가. 하지만 곧바로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갔다. 안주보다 싸다. 안주보다 싸다. 먹는게 남는거다. 먹는게 남는거다. 하는게 안하는 것보다 더 낫다. 하는게 안하는 것보다 더 낫다.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 후 요리에 착수했었다. 햄을 썰고 팽이버섯과 재료들을 다듬고 가스렌지에 물은 끓을랑 말랑 하며 끓기전에 요리재료를 다 준비해두고 그렇게 하나둘씩 끓는 물로 풍덩풍덩, 물에서 익어가는 향기가 고소하다. 그렇게 요리를 끝내고 밥과 함께 부대찌개를 먹었을 때 그 감격~ 뿌듯했다. 난 안다. 한국 영화 "광복절 특사"에서 탈옥한 특사가 빵을 한모금 베어물었을 때 그 표정을. 나도 그랬었다. 뿌듯~ 다음날 아침에도 뿌듯하게 부대찌개를 먹었다. 그날 점심에도 뿌듯하게 부대찌개를 먹었다. 그날 저녁에는 조금 심드렁하게 먹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언제까지 먹지 라는 집에서는 아무도 먹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뿌듯하게 먹었다. 속으로 나혼자만 먹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다음날 아침에도 뿌듯하게 부대찌개를 아니아니 심각하게 부대찌개를 먹었다. 속이 미식거리는 거 같았다. 그래도 억지로 먹었다. 그날 점심에도 부대찌개를 먹으면서 아~ 내가 부대찌개를 먹다가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날 저녁에는 아~정말 죽겠다 생각했었다. 기어코 다 먹었다. 그날 이후 난 부대찌개를 구경하지 않았다. 책을 반납하고 저번에 다 못 읽은 책들을 골라온다. "대중의 지혜(The wisdom of crowds)", "도발(Art Attack)" 그리고 새로운 요리책 "요즘 뜨는 폼나는 국수.파스타"...쩝...제목이 요상하군...쩝...사실 국수에 혹해서...왜? 싸니까...ㅋ 대중의 지혜는 사실 의아했다. 내가 보기에는 대중의 지혜가 아니라 대중을 다루는 책이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양놈들은 인간에 대한 실험을 많이 하더라. 이 책에서 뿐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그 대표작이 "X파일" 아닐까. "X파일"을 보면 멀더와 스칼렛이 인간에 대한 실험이나 저 너머에 있는 진실을 찾아다니지 않든가...ㅋㅋㅋ...논리적 비약이 심한가. 영화는 영화일뿐. 여하튼 대중의 지혜는 지은이의 의 머릿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정말 짜증나는 게 하나 있는데 참고사항 즉 주석이 엉망으로 달려있다는거다. 순서가 한두개씩 밀려나가거나 혹은 당겨져 별첨숫자가 붙어있다. 즉 별첨숫자와 주석이 맞지 않더라. 요즘 책을 어떻게 찍어내는건지. 걍 붕어빵 찍듯이 마구 찍어내나보다. 그래도 붕어빵은 꼬리랑 몸뚱아리랑 대가리는 뒤바뀌지는 않는다. 도발은 내가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알게 해준 책이었다. 물론 조금밖에 못 읽었지만. 제목이 매력적이지 않는가. Art Attack. 그런데 그 attack의 대상이 모호하다. 아직 덜 읽어서 그런가? 뒤로가면 명확하게 나타날까? 글쎄. 국수는 모르겠다. 읽어봐야지.ㅋ 그렇게 가방에 책을 넣고 도서관 안마당에서 커피 한잔과 담배 한모금. 하늘이 좋다. 파란게. 햇살도 좋다. 사르르르하게. 긴팔 옷을 가방에 고이 접어 넣어 어깨에 둘러메고 한손에는 짐들을 챙긴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그렇게 많이 팔리지 않을 거 같아서 얼음과 꼬지들을 조금만 넣어서 포장마차로 향한다. 사실 안감이 누비로 된 푸른 색의 긴 옷을 가져갈까 아니면 옅은 갈색의 겨울 잠바를 가져갈까 고심했다. 푸른 색의 긴 옷은 나에게도 커서 그녀에게 맞지 않을거 같았다. 어깨가 넓어서 그녀가 입었을 때 괜히 움추려보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겨울 잠바는 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을거 같았다. 왠지 이러다 내 방탄복 뺐기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괜히 벗어줘가지고...좀 움추려보이겠지만 설마 그린피스 얘들이 얕잡아 볼까 그래도 지구인의 1%에 속하는 사람들인데라는 생각을 위안으로 하고 푸른 색 옷을 가져가기로 했었다. 포장마차에 장사준비를 하고 어느 정도 되어서 꼬지에 말아둘 휴지를 준비하는데 뒤에서 공튀기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아이들의 소리도. 뒤로 돌아보니 아파트 내 농구코트에서 공이 하나 튀어서 울타리를 넘어 도로로 굴러들어 이쪽 인도로 온다. 기분좋게 일어서서 기분좋게 학생들에게 던져준다. 그런데 짜식들 고맙습니다 라는 소리도 없다. 눈빛으로 고맙다고 한 걸로 치고 다시 휴지를 준비한다. 얼마지 않아 그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오지 않는가? 오뎅이며 떡뽂이, 꼬지들을 우르르 먹는다. 게다가 다른 아이들도 몰려드고 하여튼 한시간동안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이 다 떠나고 살펴보니 만원어치 정도 팔았더라. 토요일이라 장사 안될줄 알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몰려오다니...쩝. 보통 하루에 만원 아니면 이만원인데...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벌어서 남는게 하루에 얼마냐고 재료값, 가스값 등등 빼면 밑지는 장사 아니냐고 사실 밑지는 장사다. 그래도 엄마가 편하게 보이시니 관두시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어서 일하러 가야지. 2005/05/15 01:1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