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사랑, 그 끝없는 중독" 2

황새울 2006. 7. 4. 14:38

"사랑, 그 끝없는 중독" 2



"악수를 하고 싶었어요. 당신을 만나는 순간에"

살아오다보면 때론 쉬운 말도 쉽게 들리지않는 경험을 하곤 한다.
쉬운 말 속에 무언가 굉장한 의미가 있다는 듯이 이리뜯고 저리뜯고
하나하나 해체하여 현미경으로 세세히 바라보고 그래도 의미를 못 찾으면
해체한 하나하나를 이리붙이고 저리붙이고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다시 해체하고
그러다보면 의미는 사라지고 쉬운 말도 사라져버린다.
대신 내가 원하는 모습만 남는다.

"당신을 만나면 당신과 악수를 하면서
우리는 대등한 관계이지 사랑이니 연인이니 하는
그런 관계로 발전할 의향이 없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변화해버린 의미로만 남은 그녀의 마음은
철저히 나만의 마음으로 변질화된다.
선을 그어버린 관계.
나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나는 작물이 아니야.
주어진 빛과 주어진 따뜻함 , 주어진 섹스.
모든 게 결정되어있고 모든 게 정해진 그곳의 작물이 아니란 말이야.
때로는 비닐하우스의 지붕을 뚫고 자라나
차갑게 내려쬐는 빛을 만끽하고 싶다 말이야.
그리고 시각시각 정해진 따뜻함 따위는 나를 싫증나게 해.
나를 싫증나게 하지않을 차가움이 필요한거야.
나는 내 손으로 나의 정자들을 날려보낼 벌과 나비를 선택하고 싶어.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나는 너와 악수를 하며 선을 긋는데 동의할 수 없어.

단 한번도! 서너시간 동안 단 한번도 그녀와 눈길을 마주치지 않았다.
술에 취해 기억이 당구공마냥 쿠션에 쿠션을 더해가도
그녀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옆모습과 그녀의 손가락, 그녀의 긴 머리칼들을
그리고 그녀의 차림새를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만의 느낌을.

"왜 그랬어요? 정말 그때 한번도 안 쳐다보던데"

"... ..."

모든 걸 표현해내기에는 내가 가진 게 없다.
아니, 조금이라도 표현해내기에는 지금까지 그러한 것들을 배운 적이 없다.
내가 느낀 것들, 내가 생각한 것들, 내가 보아온 것들, 나를 기쁘게 한 것들,
나를 슬프게 한 것들,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비상구를
어느 누구도 얘기해 준 적이 없다.
다만 비상구 없는 회색 건물의 계단을 묵묵히 오르기만 하면 되었다.
계단의 끝에 다다르면 황금빛 노을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며
거기에 서서 불타는 하늘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면 된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상단추를 누르고 뛰어내리면 된다.
하지만 비상단추는 오래 전에 고장나 있었고
중력에 이끌려 낙하하는 나를 어느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다.
위치에너지가 0이 되었을 때 나는
단지 치워야할 쓰레기로 인식되며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담겨져간다.
그리고 그렇게 위치에너지가 0이 된 쓰레기 봉투 더미로
군락을 이룬 곳에 안치된다.
얼마지 않아 황금빛 노을이 그 군락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불타는 군락 속에 비상구가 있다.




 

 

2006/03/08 21:3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