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사랑, 그 끝없는 중독" 6
황새울
2006. 7. 4. 17:35
"사랑, 그 끝없는 중독" 6 종이컵에 술이 계곡물마냥 차르르르 감겨져 담긴다. 마치 높은 산에서 내려온 맑고 깨끗한 산의 오줌인냥. 나는 그 놈이 맑고 깨끗한 산의 오줌인냥 벌컥벌컥 들이킨다. 6시간째 오르막과 내리막 다시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나무와 풀들로 우거진 산길을 겨우겨우 찾아서 오르고 있다. 봉우리 하나 올라서면 그 뒤에 또다른 봉우리 하나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봉우리 하나 다시 올라서면 또 다른 봉우리 하나. 사람들이라곤 하나도 없다. 오로지, 잎과 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와 나무와 나무 사이를 휘감아도는 구름소리와 나뭇가지와 가지 사이를 퍼득이는 날개짓소리와 땅과 땅 사이를 흘러드는 물소리뿐. 그런데 어느 것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소리만 들려올 뿐 하나같이 눈에 띄지 않는다. 수통에 물이 바닥난 지 꽤 오래이고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는 샘들은 흔적조차 없었다. "도대체 샘이 어디 있다는거지?" 옷은 땀에 절어 마치 물 속을 헤매고 있다는 듯 몸에 차악 감겨져 온다. 반팔티를 벗어 두손으로 힘껏 짜내니 땀이 두두둑 떨어진다. 혀는 말라 마른 입천장과 바닥 사이 허공속에서 풀마냥 흔들린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끝없이 솟아있는 작은 봉우리를 오르고 올라 천왕봉까지 가려면 아직도 몇 십개 아니 몇 백개의 소봉들을 올라서야했다. 길 위에 배낭을 풀고 뒤지기 시작한다. 물이 포함된 건 딱 하나 있었다. 참치캔. 이거라도 마셔야 살 거 같았다. 탁한 기름을 들이키며 곧 들이닥칠 갈증을 걱정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길 위에서 잠을 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의 소리. 드디어 내 귀에서 환청이 들리는구나 싶어 정신을 일으켜 세우니 길 위에 사람들이 온다. 그들 모습 역시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땀에 절어 피곤함이 온 몸에서 새어 나왔다. "혹시 물 좀 있나요? 제가 땀을 너무 흘렸더니 탈수증세가..." "너 같으면 물이 있겠니? 너와 우리의 딱하나 다른 점은 너는 오르고 우린 내려가는 것 뿐" 물 좀 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그냥 삼켜버렸다. "저기, 쌍계사에서 올라오셨나요?" "네" "얼마쯤 걸리죠? 도착할려면" "내려가는 길이시니 한 두세시간 정도면..." "아직 많이 남았네. 여보, 조금만 더 힘내요 우리" 길 속으로 사라져가는 중년 부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할 그 무언가가 자꾸만 나를 그들의 뒷모습에 눈을 맞추게 했다. 구름들이 산봉우리를 산책한다. 여기가 하늘인지 땅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어슴푸레 보이는 큰 돌을 향해 걸어가면서 선녀들도 때론 하늘과 땅을 혼돈하지 않을까라는 쓰잘데 없는 생각을 해본다. 집채만한 돌아래에 배낭에서 꺼낸 코펠과 컵들을 좌판마냥 펼쳐보인다. 때론 길게 때론 맑게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소리를 낸다. 마치 산중 음악회가 열린 마냥. 음악회의 손님은 나와 다람쥐 그리고 나무와 풀들. 통통거리는 소리에 어디선가 다람쥐 한분 오셨다. 컵과 코펠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녀석의 모습이 마냥 즐겁다. 한시간 동안 받은 물은 반컵. 미래소년 코난이라는 만화가 뜬금없이 떠오른다. 어느 사막에서 심한 탈수증세에 누워있는 라나에게 코난은 이름모를 열매를 짜서 한방울의 물들을 그녀의 입술에 떨구어주는. 코난 그 녀석 분명 라나를 아주 사랑한게 틀림없다.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한시간동안 방물 물을 받아 반컵정도 채워보니 그 사랑이 느껴진다. 종이컵에 들어찬 소주도 그때 그만큼의 양이다. 한잔의 소주에 한잔의 기억을 안주삼아 홀짝홀짝 취해간다. 바람냄새, 풀냄새, 나무냄새, 구름냄새가 여관방 가득 피어오른다. 반컵의 물을 마시고 산의 정상을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세석산장까지만 가도 철철 넘치는 물이 있겠지만 지도를 펼쳐보고는 마음을 굳히기로 했다. 그렇게 삼신봉에서 아래로 발걸음을 돌린다. 마음 한켠에서는 아쉬움과 철저한 준비의 부족함에 대한 미련이 교차되어 갔다. 그리고 지도의 샘들만 믿고 그 8월의 뙤약볕 아래 수통 하나만 달랑 들었던 후회가 밀려들었다. 하지만 다음 기회가 있으니 아니 다음에 기회를 만들면 되니라고 자위한다. 뉘엿이 산그림자가 몸을 부풀리고 야영할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때 8시간을 그토록 찾았던 샘을 발견했다. 작은 옹달샘 하나. 옹달샘 안에 도롱뇽의 알인지 누구의 알들인지 모를 알들이 옹기종기 순대마냥 또아리를 틀고 있다. "미안, 네 집에 공기를 조금 빌려줘" "우리 집 공기를 빌려주면 언제 갚을건가요?" "내일. 내가 떠날 때 흔적을 깨끗이 치우고 갈게. 그럼 안될까?" "좋아요. 흔적없이 가줘야해요" 그렇게 약속을 하고 들이킨 산의 오줌은 정말이지 맑고 깨끗하다. 눈물이 흐른다. 이 오즘을 얼마나 찾아헤멨던가. 든든한 샘을 옆에 두고 정말이지 편안한 밤을 보낸다. 산의 오줌보에는 누군가의 새생명들과 풀들이 늦은 밤까지 수다를 떠느라 쉬이 불이 꺼지지 않는다. "저 친구 약속을 지키겠지?" "날이 밝아오면 봐야지. 인간이라는게 그렇잖아."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떡해요?" "그럼 언젠가 다시 우리들을 만나기 힘들겠지" "그럼 우리가 죽는건가요?" "아니. 우린 다른 곳으로 떠나면 되지만 저들은 그렇게 하질 못할걸? 언제나 같은 길만 왔다갔다하니." |
2006/04/11 21:3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