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목
문학에서의 공유에 대해 주욱 생각해오면서
황새울
2006. 7. 4. 18:01
한가지 소홀히한 부분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외형적인 공유이냐 내형적인 공유이냐를 먼저 생각지 않고 표피적인 공유에 대한 걱정이 우선시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글줄을 이룬 단어들의 조합문을 남에게 뺏기지 않을까 하는 아주 저급스러운 걱정이었지. 그렇게 심도깊게 조합을 이루어내지도 않으면서 말이지. 사실 인간들은 많은 걱정들을 하면서 살아가지. 그 걱정들이 실제 도움이 되는 경우는 1%도 안미치는데 말이지. 나 역시 그런 걱정 속에 묶여있었다는 반성을 해본다. 물론 지금 환골탈태하여 그 묶임을 벗어났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실제적인 문학에서의 공유는 가장 기본적인 공유 즉 내형적인 공유가 이루어져야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형적이라고 해서 무슨 형태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가 본 것들을 혹은 느낀 것들을 내가 아는 형태의 글로만 써야할 것이 아니라 타인이 충분히 보고 느끼게 할 수 있는 글들로 이루어져서 타인에게도 내가 본 것들과 느낀 것들에 확연히 일치되지는 않더라도 근사치에 가까운 감정들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하여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진정한 문학에서의 공유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우려점이 있다. 대중의 기호에 부합하는 것과도 같은 모양새이니 하지만 내가 보고 느낀 것이 우선시 된다는 점에서 충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일이 모든 글들이 이렇게 씌여져야하는가 라는 반문이 생기기도 하지만 글은 몇가지 종류의 글들로 구분되어져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확연히 일치시킨 글이 좋은 글이라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럴 필요성이 있을 때는 그렇게 쓰야겠고 그럴 필요가 없을 때는 그렇게 쓰지않으면 되는 것이니... 조급하게 생각하다보니 깊게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린 듯 하다. 가장 중요한 내면적 의미성을 상실한 채 너무나도 외면적인 모습에 마음을 현혹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급하게 간다고 해서 이루어질 것도 아니고 느리게 간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도 아닌 것이 詩이자 인생이 아니든가 조금은 느림의 미학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시대인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