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목

환상과 희망을 구분하라!

황새울 2006. 7. 4. 18:02

최근에 몇 권의 책을 읽다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몇 권의 책이란 게 양키의 번역본이었는데 그 책들에 양키의 영화와 주인공들이 자주 거론된다는 것이었다. 양키 애들이라고 다 나쁜 것도 선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책을 보면 참고 문헌에 대한 각주들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다. 언뜻 들은 얘기로 중고생일때부터 인용문을 철저히 표기하는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 점은 참 좋아보였는데... 이번에 본 책에서 영화와 그 주인공들 그리고 대사의 인용들을 보며 이상야릇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과연 영화와 그 주인공들의 행위, 그리고 대사가 인용될 만큼 가치있는 것일까?
우리는 현실 세계에 살면서 현실 세계를 모방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상상의표현인 환상에 깊숙이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미국에는 아주 특이한 과거가 하나 있다. 그 과거는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또한 그 시대의 미국인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 과거는 두 자매의 의도하지 않은 사기극이었다.
아직 미 성숙된 카메라로 두 자매는 요정을 찍었다. 꽃위에 날고 있는 요정. 이 사진으로 미국은 발칵 뒤집어졌다고 한다. 요정의 존재유무에서 사진의 진위 그리고 자매에게 요정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려달라는 문의쇄도.
근 60여년동안 이 사진의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잊혀져갈 뿐.
그리고 어느 누구에겐가는 요정이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유전되어져갈 뿐.
그 자매의 언니가 죽고나서야 동생은 사실을 털어놨다. 카메라 렌즈 앞에 요정의 그림을 붙여 사진을 찍었노라고. 요즘에야 들으면 그걸 왜 모르나 하겠지만 1800년대 후반에 일어난 이 사건 아니 이 기법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 기법은 영화에 바로 적용되었고 영화가 새로운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요정 사건은 우리가 지금껏 보아왔던 미국 주류의 영화에서 꾸준히 써먹는 단골이다. 요정에서 미키마우스, 요정에서 슈퍼맨, 요정에서 소련(적국), 요정에서 ET, 요정에서 종합선물세트로(미키마우스+슈퍼맨+소련(적국)+ET=인디펜던스데이)
혹자는 요정에서 소련(적국)이 어떻게 다른 것들과 같이 취급되는가에 대해 의아해할 것이다. 하지만 곰곰히 살펴보면 다른 것들과 다를 바가 없다. 냉전시대의 소련은 소련의 진실보다 적국이라는 이미지로 떡칠을 해놓은 것이니.

일상의 환경을 모방했지만 일상은 없다. 환경은 단순화되고 일상이 사라진 현상 즉 미키마우스, 슈퍼맨, 소련(적국), ET 그리고 종합선물세트만 기억되어진다. 이러한 환상들은 영화 뿐 아니라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제는 일상에서도 환상이 침투되었다. 물론 상상력은 위대하다. 그것은 신들에게서 훔쳐온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같이 새로운 것들을 요리해낸다. 또한 사고 진화의 등불이 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환상은 아니다.
환상이 마치 판도라에 마지막 남은 희망인 냥 그 주인행세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기우인가?
환상은 인간을 현혹시킨다.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하지만 그 신기루에 도달할 즈음에는 모래만이 존재할 뿐이다.
물론 환상의 유통기한이 100년쯤 된다면 한살배기 어린 아이에게 심어줄 만도 하다.
왜?
평균 수명으로 따져 환상이 깨어지기 전에 죽을 테니 말이다.
수 많은 다른 옷을 입은 환상들이 일상들 속에 널려있다.
이제는 일상들이 오히려 환상스러울 지경이다.
환상으로부터의 오염 속에 희망마저 찌들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주변부로부터 무작위성 일방주입으로 주어지는 환상의 철저한 해석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희망을 구분해야한다.
그리고 자신의 희망을 쌓아야 한다.
환상은 주어진 거대한 선물용 포장 박스일 뿐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희망은 당신의 몫이다.




 

 

2006/01/04 00:2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