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

free hug

황새울 2006. 10. 25. 16:44

요즘 심심찮게 인터넷과 기존 인쇄매체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작된

free hug 기사를 접하게 된다.

 

free hug 가 나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지만

왠지모를 느낌,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할까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이 계속 드는 것은 왜 일까?

 

그들은 절실히 알고 있을까?

왜 사람들과 사람들을 포옹하고 껴안아야하는지...

 

다음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free hug에는

왠지모르게 행복과 사랑이 보여지지 않는 듯 하다.

차라리 댓글에 실린 글들이 더 행복과 사랑을 보여주는 듯 하다.

 

세상은 아주 빠르게 사람과 사람들의 연결고리를 잘라내고 있다.

원래는 다같이 공동체(원시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사람들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가 뿔뿔히 흩어지게되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로가 서로에 대한 믿음보다는 불신으로 충만해가고 있다.

 

나만 잘나면 되지

나만 부자면 되지

나만 똑똑하면 되지

사실은 이 모든 "나만"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나만"이라는 존재는 "남들보다"라는 존재가 있어야만 더 우월성은 가지게 된다.

언젠가부터 봉건제 시절의 왕들의 철학이 우리에게 스며들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 가진게 없는 사람들, 똑똑하지는 않지만 착한 사람들, 이 모두의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아주 빠르게 소외되어가는 세상.

절실한 행복, 절실한 사랑은

절대 혼자서 나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건 부처나 예수가 무인도에서 살지 않았음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빌게이츠나 이건희가 무인도에서 살지 않듯이 말이다.

 

서로가 서로를 단절시켜가고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켜가며

자신이 자신을 소외시켜가는

고도화된 자본사회 속에서

진정한 사람의 냄새가 존재함을 보여야만

사람들은 자신 속에 있는 사람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사람.

영웅이 아니라 왕이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는 대통령이 아니라

기업제국의 왕이 아니라 똑똑한 지식인이 아니라

진정한 사람.

 

인간의 두뇌는 두가지의 면을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된다.

하나는 positive

또다른 하나는 negative

 

언제나 positive한 자세를 유지하면 산다는 것은 거짓말에 가깝다.

아니 아니 병자에 가깝다.

그것은 negative한 자세를 유지하면 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때론 긍적적이며 때론 부정적이기도 한

두 가지 성분이 시이소마냥 왔다갔다하는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절실하게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성분이 시이소마냥 왔다갔다 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일게다.

 

그러한 사람이 진정한 사람에 가깝지 않을까?

 

글이 조금 휘어졌는데

매체를 통해 보는 free hug에서

그들은 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에서 할까?

번화가에 사람들은 절실한 행복과 절실한 사랑을 필요로 할까?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 필요량이 많지 않을 듯 한데 말이다.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정말 절실한 행복과 절실한 사랑을 포옹으로 전해야하는 건 아닐까?

 

물론 포옹이 무척이나 낯설은 문화지만

행복에 대해 사랑에 대해

조금이라도 깊게 생각해보았다면

누군가를 꼬~옥 끌어안아주고 싶어지지 않을까?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에게는 남을 안아주거나 남의 등을 두드려주거나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두팔과 두손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팔과 두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