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다
바람이 차다.
왠지 모르게 차가운 바람이 꽤나 기분좋게 느껴진다.
아마도 너훌거리는 정신을 깨우는 듯 해서일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들이 흘렀고
많은 일들이 흘러갔고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그래도 오늘만은 왠지 기분이 좋다.
한해의 끝이라서기보다
새로운 해의 시작이 다가와서라기보다
마냥 기분이 좋다.
다리도 삐그덕거리고
손은 고양이덕에 성할 날이 없고
머리는 온통 뒤죽박죽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
세상에는 두가지의 조건이 있다.
하나는 유전자 하나는 교육환경
첫번째 조건은 물려받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어머니의 유전자가 약 70%
아버지의 유전자가 약 30%라고 알려져있다.
물론 여기서 변이 유전자도 있다.(모든 인간은 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유전자 결정론이라고 해서
태어나기 전에 모든 것은 결정되어져 있다라고 하는 설이다.
어느 정도까지만 공감한다.
두번째 조건은 만들어진 것이다.
훌륭한 유전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의 교육환경은
역시나 훌륭한 교육환경이 될 수 밖에 없다.
어릴 때의 교육은 그 아이가 커서 자각하지 못하면
그것을 깨트릴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들의 교육에 많은 신경을 쓴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바껴야할 것이 아니라 어른이 바껴야한다.
왜냐하면 교육환경을 아이들은 만드는게 아니니까
이 두가지 조건은 흔히 하는 얘기로 인간을 결정하는 조건이다.
나는 이 두가지 조건에 대한 글을 보면서
너무 빡빡하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가난한 사람은 영원히 가난의 늪에서 나올 수 없고
열등 유전자는 그 되먹임 고리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이 두가지 조건이 완벽한 충족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래서 난 네가지 조건을 생각했었다.
세번째 자아를 찾기 위한 꾸준한 도전 네번째 1%의 운
세번째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며 어느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라고 얘기해 줄 수 있는 이뿐.
이 조건은 앞의 두 조건보다 엄청 험악한 조건이다.
흔한 얘기로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알고자만 한다면 언젠가는 찾아질 것이다.
네번째는 정말 운이다.
우리가 흔히 듣는 로또나 복권의 운발은 아니다.
자아찾기를 하다보면 좌절도 절망도 하게 된다.
그 순간에 어느 누군가를 만나게될 운인 것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고 살아있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운에 대해 곁들일 얘기가 하나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한번은 들어봤을 얘기일 것이다.
개구리처럼 뛰어올라라. 한번 실패해도 다시 뛰어오르고
다시 실패해도 또다시 뛰어오르고...
화톳장의 비광을 보면 그 개구리 얘기가 나온다.
12를 뜻하는 비광에 우산을 쓴 주인공은
고대 일본의 유명한 문인이라고 한다.
그가 글을 써서 스승에게 보여주면 스승은 언제나
이게 글이냐 이런 글을 쓸거면 글을 그만둬라 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는 반복되는 그말에 죽을 결심을 하고
비오는 날 다리에 가서 뛰어내릴려고 하였다고 한다.
그 다리에 가서 뛰어내리려고보니
다리 난간에 자란 풀위에 작은 개구리 한마리가
그 위 풀로 올라가기 위해 뛰어오르더란다.
한번 뛰고 실패하고 다시 뛰어 실패하고
그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하찮은 놈이 얼마나 오랫동안 뛰어오르는가를 보자 라는 생각을 했더란다.
그 자리에 쭈그려앉아서 하염없이 그 모습을 보는데
수십번 아니 수백번은 됐을까
그 하찮은 개구리가 훌쩍 뛰어오르더라는 것이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 부끄러워 자살할 생각을 지우고
열심히 글공부에 매진하여 당대에 유명한 문인으로 남았다고 한다.
(이 내용은 "사진예술12월호"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얘기가 화톳장에 있을까라고 생각이 드는 이는 위 책을 한번 살펴보길)
운이라는 것은 곁들인 얘기처럼 이런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오늘은 기분이 좋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