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 이야기와 박근혜
요즘 항간에 떠돌고 있는 얘기 중 하나가 "요코 이야기"라는 실화 소설이다.
이 실화 소설을 두고 말이 많다.
사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든 허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든 어쨌든 다 소설이다.
그런데 소설이나 詩 혹은 예술이라고 불릴 수 있는 분야의 작품들에게는 문제점이 있다.
그 문제점은 이번 "요코 이야기"에서 나타난 문제와 같다.
개인만의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다시말해 개인과 타인의 세계관이 절충되지못하고 또한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뒷면을 꿰뚫어보지 못한 개인의 세계관이 얼마나 잘못되어질 수 있는 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하나더 얘기하자면 그 책을 국내에 출판한 문학동네라는 출판사에 대해 상당히 이질적인 감정을 느꼈다. 괜찮은 출판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이미지가 신기루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주변부리 얘기가 많았는데 추리고
난 이 "요코 이야기"의 사건을 보며 그건 소설이니까 라고 자위한다고 치자 하지만 south korea에서는 소설보다 더한 현실 진행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지고 있다.
독재보다 더한 신권을 행사한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보라!
물론 그녀에게서 그녀의 아버지는 더할 나위없는 정말 훌륭한 아버지였을 것이다.
변화에 변화를 거듭나기 하여 대통령이라는 아니 그보다 더한 신권을 장악한 아버지였을테니
또한 그녀에게는 그보다 더한 주변인에게서 온갖 칭송과 아양을 받고 자랐을 것이다.
그녀 개인에게는 정말 더할 나위없는 위대한 아버지였을테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 보라!
얼마나 잔혹하고 얼마나 폭력적이며 얼마나 기만적이었는가를
하지만 그 조금의 옆눈길을 마다한채 오로지 아버지의 위대한 업적의 후광을 업고자하는 그녀와 "요코 이야기"의 저자가 무엇인 다른가?
다른 게 있다면 "요코 이야기"는 소설이고 박근혜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동시대에서의 진행형이다.
이래서 south korea에서는 문학이 안된다.
문학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현실의 장벽을 문학은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코 이야기"는 재미교포들의 문제일 뿐으로 얘기되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박근혜는 여전히 달린다.
그리고 south korea의 people들은 "요코 이야기"처럼 피해자가 수혜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역설적인 현실에서 청룡열차에 몸을 맡기며 오늘도 무사히를 외치며 실려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