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

[人生]순수한 영혼을 파괴시키는 가난

황새울 2007. 1. 24. 17:24

 

가난해보지 않은 사람은 가난의 절박한 심정을 알 수 없다.

그 가난이 어떻게 인간의 순수한 영혼을 파괴시키며 또한 인간의 순수한 영혼을

어떻게 더욱 단련시키는지.

가난하고자 가난해지 사람은 극히 드물다. 다들 태어나보니 가난해 있었거나

살아가다 가난해진 경우가 있겠지만 후자보다 전자의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쉬이 알리라. 물론 후자의 경우도 고통스럽겠지만 바닥에서 벗어나본 적 없는 자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국민학교 출신이다. 지금처럼 초등학교가 아니라.

굳이 국민학교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름이 통용되던 시절은

분명 초등학교라고 불리는 시절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코흘리개들에게도 세금 징수를 했었다. 방위 성금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조국의 국토방위와 빨갱이들의 도발을 막기 위해 국민학생들에게 일괄적으로

돈을 거두었다. 그때 당시 성금의 각 개인치 할당량은 50원이 데드라인이었는데

성문법적 잣대를 갖다대면 30원이 데드라인이었으나 모두들 50원을 내었기에

누구나 50원 아래로 내면 안되는 줄 알았다. 사실 50원 밑으로 내면 상당히 고차원적

수법으로 인간으로서 모멸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매번 50원을 내었는데 어느 날인가 엄마가 30원만 주신다. 철저한 바른 국민으로의

교육을 받아온 나치 소년단 같았던 나는 징징거리며 50원을 내야한다고 엄마에게

떼를 썼었다. 엄마는 방위 성금 안내문에 30원부터라며 괜찮다고 30원 들고 가라고

하셨다. 그때까지 몰랐었다. 우리 집이 얼마나 가난한 집이었던가를. 그렇게 30원을

들고 학교에 가서 방위 성금을 내고 얼마지 않아 다시 담임이 들어와서는 몇몇을

호명하며 일으켜 세운다. 그 몇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를

알 길이 없는 아이들은 멀뚱거리며 서 있는데 담임은 반아이들에게 잘 들으라는 듯

크게 얘기한다.

 

"다음부터 방위 성금은 50원 가지고 와. 30원은 안돼. 50원 가지고 올 사람만 앉아."

 

그때 한참 서 있다가 앉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담임의 얘기를 부드럽게 표현해서

그렇지 상당히 모멸적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그리고 지금까지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방위 성금을 못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남들하고 똑같은 방위 성금을 내지

못하는 가난은 다른 또래의 아이들에게 알려질 좋은 기회였다.

나는 왜 선생님이 저렇게 얘기할까 분명 엄마가 말했듯이 안내문에는 30원부터였는데

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평등한 대우를 원할 수 밖에 없다.

돈이나 지식, 가진 것들에 따른 평등이 아니라 지구라는 우주에서의 섬에서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똑같은 대우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잔혹한 일들을 저질러 왔다. 그 잔혹한 일들이 인간에게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진행되어져 왔다.

단지 내가 똑똑하기 때문에, 단지 내가 힘이 세기 때문에, 단지 내가 돈이 많기 때문에,

단지 내가 담임 선생이기 때문에, 그러한 폭력은 아이들과 어른을 구분하지 않는다.

가난은 어린 영혼에게 상처를 주며 그 상처를 재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남아있다. 하지만 상처가 상처로 남아만 있게 되는 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처는 재인식의 과정을 거치면서 아물고 새로운 살이 돋게 되며 크나큰 힘이 되는 것이다.

 

수레를 끌어라 목마름의 나날

그 긴 낮을 지나 황홀한 일몰이면

살아온 날들의 상처에서 우리가

살아갈 날들의 힘을 얻을 때까지

 

노동-구광본

 

비록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난하지만 그렇다고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가난해야할 이유는 없다. 마음마저 가난해진다면 자기 자신이 자신을 소외시키는

참혹한 일 일 것이다. 가난이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려 매번 시도해도 우린 그것을 기회로

나를 단련시켜야 하는 것이다.

나는 늘상 나의 영혼을 파괴하려는 나와 나 자신이 나를 소외시키려는 나와 살이있는

모든 것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려는 나와 싸우고 있다. 지금까지 수없는 많은 길들을

보아왔지만 이토록 힘든 길은 없었는 듯 하다. 그럴 때마다 되뇌이는 詩 한편이 있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성하다.

 

서시-이정록[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詩가 아름다운 것은 진실을 꿰뚫는 힘과 스스로에게 타이르며 아우러고 담금질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이서 가난도 詩와 비슷한 소리를 낸다.

가난한 모든 이들이여, 그대의 가난은 詩와 같다. 스스로에게 갇혀있지 말고

띄워보낼 수 있는 詩와 같이 인생을 만들어 가자. 브릉브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