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어느 라이더의 일지 2

황새울 2023. 2. 3. 23:10

 

어느 라이더의 일지 2 

 

배민 커넥터를 한 지가 벌써 7개월차에 접어들었다. 확실히 작년과 체감 온도가 다르다. 

작년 여름, 가을에는 한 8시간 하면 10만원 넘게 벌었는데 요즘은 8시간하면 8만원 될까말까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에 빠짝하는건데...벌어놓은 돈도 없고 빚도 없다. 거기다가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땅도 없다. 여자는 더더욱 없다. 그리고 아는 판새도 검새도 변호새도 없다. 요즘 같은 시국엔 아는 검새 하나 있으면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릴텐데...쩝...인생 헛 산건가? 

오늘 음식을 픽업하러 간 한 식당에서 사장이 나한테 물어본다.  

'기사님, 다른 곳은 배달 많나요?' 

'별로 없는데 왜 그러시는데요? 

'일반대행업체(바*고, 생각*로, 스파*더 등등) 기사가 와서 여기는 왜 이렇게 장사가 안되냐고 해서 내가 온갖 생각을 다했거던요' 

그 기사 양반 말을 좀 잘 하지 어떻게 가게마다 다 장사가 잘될건가 말이다. 사장에게 별로 안좋다. 잘되는 집은 예전부터 잘 되는 집이었고 전반적으로 안좋다고 얘기해주면서 배민 커넥터는 울산 전체를 배달하니 내가 본 바에 의하면 그렇게 좋은 곳은 몇 곳 없다고 얘기해주었지만 그래도 사장 아줌마는 안절부절이었다. 가스값에 전기값에 월급빼고 다 오르는 시국에 어떻게 좋을 수가 있을지... 저녁에 마트에 두군데나 들렀는데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즉석 섭취 식품칸이 예를 들자면 유산슬이라든지 초밥이라든지가 텅 비어있어서 일하시는 아줌마에게 물어봤더니 조기소진이란다. 그래서 지금 두개 남아있던 즉석 섭취 상품인 새우튀김을 떨이로 사와서 막걸리 한잔 하는 중이다. 오늘 유산슬 먹고 싶었는뎅...컹 

낮에 픽업하기 위해 주차하다 애마가 휙하니 쓰러지면서 옆불떼기가 깨졌다. 아놔, 하수도 그레이팅 위에 서 있는 줄 모르고 세웠다가 오토바이 발이 그레이팅 사이로 빠지면서 걍 자빠졌다. 10년은 더 타야하는데 자꾸만 생채기가 생기고 있다. 오늘은 좀 이상하긴 했었다. 오전에 콜도 세개나 놓치고 말이다. 콜 수락했다고 생각하고 달렸는데 주문내용이 뭔지 픽업지에서 전달지가 어딘지만 보고 수락버튼을 누르지 않은 경우였다. 마음이 급하면 안되는데 오전에 왠지 모르게 급해졌었나보다. 그래도 오늘 우리집 아파트 앞동에 배달 왔다가 두유팩도 하나 받았다. 벨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으니 문을 열면서 두유를 하나 주시는거다. 픽업지 가게에서는 간혹 있는 일인데 전달지에서 이렇게 받은 경우는 오늘이 처음이다. 아...작년에 아파트에 배달갔다가 현관문 앞에 '기사님 감사합니다' 라고 초딩 글씨체의 대자보가 있었다. 그때 엄지척하면서 전달완료 사진을 보냈었는데 ㅋ 

배달 라이더를 6개월 넘게 하면서 느낀 건데 늦게 가면 가게 사장이든 주문자든 말을 안한다. 졸라 늦게 가면 머라칸다. 근데 이게 배달하는 입장에서는 복불복이다. 오늘 같은 경우에도 짜장면 콜이 들어왔는데 조리완료된 상태고 전달지까지 족히 신호 다지키고 과속 안하고 가면 15여분은 걸린다. 이런 경우 과감히 콜을 거절하는데 내 경험상 이건 가도 가게 사장이 아무 말 안하고 주문 고객 역시 아무 말 안한다. 면은 퉁퉁 불어있을거고 그러면 주문 고객 클레임 들어오고 가게 사장은 저 기사 우리집에 배차하지 마세요가 100% 될거라고 본다. 요즘 콜 수락과 동시에 조리완료가 너무 많은 거 같아서 조리완료 된 걸 걸러서 수락하게 되는데 되도록이면 면은 거절이다. 물론 면 따로인 경우는 한번 생각해보지만... 어느 짜장면집 사장한테 들었는데 면은 아무리 빨리 가도 무조건 뿐단다. 

사는 게 자꾸만 재미가 없어질려고만 한다. 아니, 사는 게 자꾸만 기계처럼 되어가는거 같아진다. 날개를 잊어버렸나? 아니면 꿈꾸는 것을 잊어버렸나? 어쩌면 늙어가는, 나 스스로의 가질 수 있는 자본에 대한 헛된 꿈이 산산히 파편화되고 있는 과정인가? 그래서 어떡하든 좀 재밌게 살아볼려고 오랜만에 끄적거려본다. 

떨이로 더 끄적거려본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가난한 자를 위한 나라도 없다. 

더욱이 부자를 위한 나라 역시 없다. 

다만, 부자를 위한 지구만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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