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라이더의 일지 5
배달업에 뛰어던지 1년이 약 한달 못미치게 남은 오늘, 한번도 해보지 않은 실수를 해버렸다.
음식 배달이었는데 전달지에 가서 배달가방을 열어 포장된 음식을 들으니 포장비닐 바닥이 버얼겋게 홍수가 졌다.
아~ 이게 뭐였지 라며 주문내역을 보니 김치찌개다. 순간, 아놔 포장이 잘못된 거 아니가 라며 생각했었더랬다. 묶여진 비닐을 뜯어 확인할 수도 없고 대충 보니 일회용 용기는 그런대로 괘안타. 일단 어플에서 신규배차를 끄고 출렁거리는 음식을 들고 벨을 눌렀다. 고객 요청 사항에 문앞에 두고 벨 눌러주세요 였는데 아니다 다를까 앞에다 두세요 라며 고객이 얘기하기에 좀 나와보셔야할거 같습니다라고 했지만 나는 복도에서 얘기하니 소리가 작았는지 한참이나 기다렸지만 고객이 나오질 않아서 다시금 벨을 누르고 고객은 앞에다 두세요 라며 다시 얘기하고 이번엔 좀 더 큰 목소리로 얘기했더니 고객이 나오신다. 상황을 얘기하고 괜찮겠습니까 하니 마지못해 괜찮다고 한다. 나 같아도 이거 못 먹으니 반품하고 재배달 요청할게요 할거 같아서 오늘 번 거에서 까고 집에 가서 내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
배달을 시켜 먹는 사람은 다 각자의 이유가 있다. 돈이 많아서 365일을 배달을 시켜 먹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아버지의 생일날, 케익을 전하고 싶어서 시키는 사람도 있고 독거노인에게 한끼를 전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식당에 가기 힘들거나 한 이유에서 시키듯이 각자의 이유가 있다. 오늘 그 여러가지 이유들 속에서 가장 기본인, 가게에서 먹는 듯한 기분이 나는 배달에서 나는 완전 실패했다. 거기다가 남탓까지 해버렸다.
나는, 지구라는 우주에서 티끌보다 작은 곳에서 살며 그 지구보다 더 작은 바이러스 같은 존재인데, 지구의 힘에 붙어살며 그걸 망각하고 오토바이를 얼마나 획획거리며 돌렸는지, 작용이 있으며 반작용이 있다는 그 간단한 인간 물리학도 무시해버린 나를 반성한다.
그리고, 고객에게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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