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사랑, 그 끝없는 중독" 3

황새울 2006. 7. 4. 14:39

 

"사랑, 그 끝없는 중독" 3



차창 밖은 어둠이 아지랭이마냥 모락거리며 피어 오른다.
옅은 회색빛으로 물들여져가는 풍경은 누군가 오래된 벼루에
정성스레 먹을 갈은 듯 그 색에서 그윽한 향기가 난다.
내가 처음 이곳 세상에서 맡은 향기처럼.
향기가 아름다운 것은 그 냄새가 전부여서 그런게 아니다.
향기가 아름다운 것은 그 향으로 인해 내 마음 어딘가에서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기억을.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해요.
북유럽쪽 바다에 가면 섬들이 많아요. 아기자기한 섬들이.
저렇게 섬들을 껴안고 있는 호수같은 바다가 좋은 걸요.
저런 바다가 바다 같아요."

통영 앞바다가 내려보이는 휴게소에서
그녀와 똑같은 곳을  바라보며 바다를 얘기한다.
햇살은 비스듬히 경사지어 굴러 떨어지고
바람은 잔잔한 파도마냥 물결쳐  온다.
그 물결에 그녀의 긴 머리칼이 리듬을 맞춰 춤을 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선을 그으며.
그 선에서 그윽한 향기가 꽃처럼 피어난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꽃처럼.

"저 아래로 내려가봐요."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간 그곳에 작은 벤치하나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어느 누구의 시선도, 그 누구의 소리도 없는 비밀의 화원마냥
그곳은 그녀와 나, 단 둘만의 화원이 된다.

"나도 하나만"

그녀의 입술에서 녀석은 온 몸을 태운다.
아마도 녀석은 가장 행복한 시간 속에서 자신을 불태우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만약 내가 그였더라도 똑같이 나를 불태웠으리.

분명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데 머뭇거리고 있는 그녀를 눈치챘다.
그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얘기
하지만 그 얘기가 기필코 나올 수 밖에 없는
그런 암울한 환경은 나를 가혹하게 만든다.
햇살마저 우울하게 흔들리고 바람은 서글픈 바이올린 선율처럼 내 귀를 떤다.
섬들을 껴안은 바다마저 그 섬의 무게에 짓눌린 듯
파랗게 파랗게 질려만 가고 있다.
그렇게 섬들조차도 파랗게 질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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