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그들과의 반나절" #3 고래를 왜 보호해야할까? 단지 개체수가 줄어들기에 아니면 멸종의 위기에 있기에, 단지 바다 생태계 피라미드의 최상위라서 그들이 사라지면 먹이사슬구조가 붕괴되기때문에. 왜 보호하자고 난리일까?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살기도 힘들어 길거리로 나서고 또한 소외된 사람들이 가난하다라는 이유로 자신이 자신을 소외시켜버리는 이 엄청난 모순의 시대에 인간보다 고래가 그렇게 중요할까? 그린피스를 만든 밥 헌터는 No mass, No whales 라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그는 히피기질이 다분한 듯한 사람으로 생각되어진다. 그린피스를 만들 당시 그의 초창기 사진을 보면 정말이지 히피같다. 그가 말했다고 하는 그 말 앞에는 아마도 If you love earth & If you love human & If you love whales 라는 말이 생략되었을 듯 싶다. 사실 그린피스의 지금까지 운동을 보면 아주 격렬하고 또한 전세계 매스컴을 끌어당기기도 한다. 또한 그들이 매스컴을 안끌어당겨도 국가들이 끌어당겨주기도 한다. 그린피스의 1호선 레인보우 범선을 언젠가 호주의 한 항구에서 프랑스 정보기관이 폭파 침몰 시켜버렸던 사건처럼. 지금의 레인보우선은 그 운전대만 침몰해간 1호선 레인보우의 것이다. 그린피스에서는 고래가 보호디어야 하는 이유를 상징적으로 얘기한다. 인류의 가난과 소외의 문제가 아주 광범위하고 세계적이다. 그리고 환경파과의 문제도 그렇다. 우리가 고래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상징으로 바다에서 그 어느 누구도 어떠한 생명체도 고래를 멸종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서는 가능하다. 만약 우리가 인간에 의한 이 파괴적인 행위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즉 인간과 대적할 수 없고 대화할 수 없는 이 거대한 생명체조차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 인간이 인간을 도울 수 있겠는가? 바다에는 많은 멸종 위기의 생명체들이 있지만 고래가 선택된 것은 하나의 상징성때문일 뿐 궁극적으로 모든 생명체가 이곳 지구에서 어울리며 살아야한다고. 물론 그린피스의 원본 그대로 내용은 아니지만 뼈대는 같다. 나 역시 그들의 얘기에 공감하고 또한 고래뿐 아니라 무수한 많은 생명체들은 우리와 동등한 입장에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우리 인간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또한 표현하지 못한다해도 폭력과 소외를 시켜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들 흔히 장애우라고 얘기하는 우리 주변의 친숙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될 수 있는 것일게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이러한 것은 고래가 우선이냐 인간이 우선이냐 식의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은 둘다 동시에 진행되어져야할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서 고도 자본주의를 성장시킨 하나의 동력인 분업(메뉴팩쳐)을 접목해볼 필요가 있다. 즉 고래보호를 통해 평화로운 지구를 만들어가는 팀과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끌어안으면서 평화로운 지구를 만들어가는 팀들이 존재해야하는 것이다. 이 분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이나 다양성의 존재가 중요하다. 마치 나무에서 큰 하나의 줄기가 있고 수많은 가지가 있어 그 나무가 자라듯이. 그리고 하나! 우리 인간 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이곳 지구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지구상에서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생명체로 살고 있으며 이곳 지구에서 단 한번뿐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인간의 손은 무언가를 파괴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생산해내고 무언가를 창조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등을 긁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끌어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고래 대사관으로 향한다. 이제는 그렇게 낯설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낯설다는 건 꼭 두려운 것만은 아닌 듯 하다. 낯설게 보이므로 인해 그걸 더 인지하려고 하는 행동의 자극제이기도 한 것 같다. 어쩌면 아는 너무 낯선 것만 쫓아다닌건 아닐까 하이라고 하며 대사관에 발을 들여놓는다. 거기에 있는 그들도 반갑게 하이라고 한다. 기자회견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제임스 그 친구는 바닥에 천을 깔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일종의 기자회견 배경으로 사용할 커다란 천에. 이 친구 그림도 제법 그린다. 나중에 누군가를 통해 이 친구 얘기를 들었는데 그린피스 자원 봉사자로 여러차례 참여했다고 한다. 의사소통이 되었다면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영어회화를 좀 피나게 해둘걸이라는 후회가 새록히 몰려든다. 의사소통이 안되다보니 그들이 무언가 내게 이야기하려하면 먼저 손부터 훼훼 저었다. 사실 그들이 쓰는 영어가 지극히 평범한 일상적인 단어였는데도 불구하고 지레 겁부터 먹고 손부투 훼훼 젓는 꼴이었다. 그건 또다른 문제를 야기했었다. 나의 그런 모습을 몇번이나 보아온 그 친구들은 저 친구는 얘기하길 꺼린다는 메세지가 무의식 속에 자리한 것이다. 그들의 국적이 다 다르고-물론 영어권 나라도 있지만- 다들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기에 가장 쉬운 단어로 가장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태도는 아예 접근을 차단하는 듯한 인상이 강했기때문이다. 못하는 영어래두 손짓발짓을 다써가면서 했으면 훨씬 더 그들과 가까워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래서 부정적인 마음과 긍정적인 마음에는 커나큰 차이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 두가지 마음은 알게 모르게 행동, 언어, 표정에 의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진다. 어느 누구도 부정적인 마음과 문을 열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되도록이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열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과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긍정성과 적극성과 열정을 전달받고 싶기 때문이다. 울산시의 공무원들이 고래대사관을 찾아왔다. 퇴거명령이 떨어졌기에 그린피스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보기 위해 찾아온 듯 하였다. 물론 그들의 말은 왜 여기서 캠페인을 하는지 알려고 왔다였지만. 울산시 공무원들과 고래대사관 책임자인 짐이 서로를 마주보며 얘기를 나눈다. 고래 연구소내에 있는 고래해체장은 연구를 위한 것이다. 단지 고래 샘플 채취를 위한 실험실용이다. 일본에서도 연구소내 고래해체장이 있지만 그건 연구를 위한 게 아니라 불법으로 포획한 고래를 합법적으로 상품화시키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다. 심플은 바다에서 살아있는 상태의고래에서도 충분히 채취 가능하다. 고래가 어민들의 어장에 너무 많이 생겨 어민들의 어획량이 줄어들어 생계에 위협이 되고있다. 이 자료를 한번 봐라. 다른 나라의 경우 고래관광으로 이전의 어업 수입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토론이 되지 않는 자리였다. 중간에 통역을 하는 통역사만 죽어나가는 자리 같았다. 나는 책임자가 아니라서 확답을 못한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울산은 선사시대부터 고래를 잡아왔는데 무조건 잡지마라하면 안된다. 이것도 전통 문화다. TV프로의 토론프로 같은 느낌이 확들어 쓴 웃음이 나왔었다. 타협을 하는 그러니까 서로의 의견에서 합의점을 도출하려는 게 아닌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 식의 한국형 토론들. 상대방의 자료와 의견은 그냥 무시해도 좋은 적의 화력. 무조건 나의 자료와 나의 의견만 옳다고 밀어붙이는 나만의 화력.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는 토론이 사라지고 웅변만이 존재하고 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얼토당토않는 웅변이. 그들의 휴석처이자 식당인 천막안에 앚아 그들이 갖고 온 영문판 한국 관광책자를 들여다본다. 주욱 보다가 울산에 관해서는 무슨 내용이 있을까하는 호기심이 생겨 목록에서 울산을 찾아 페이지를 열어보고 쓴 웃음이 나왔다. 단 한자의 사진과 그에 대한 설명이 다였다. 그 사진은 바로 울산바위. 울산에 있지도 않은 울산바위가 울산의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하긴 그 유명한 반구대 암각화조차도 겨울 가뭄기때를 빼고는 물 속에 잠겨있는 판인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울산시에서 그린피스와 그 자원봉사들을 데리고 반구대 암각화를 보여주면서울산이 선사시대때부터 고래잡이를 해왔으며 그 문화가 장생포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그러면서 상업포경에 대한 문제와 문화적인 포경에 대한 문제를 얘기해나가면서 풀어나가는 그러면서 고래관광에 대한 것들을 알아나가는. 그리고 울산에 자리한 여러 관광지 혹은 유적지들에 대한 책자를 그들에게 주면서 울산에 대해 알리는. 좀 더 고차원적인 몸짓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가 엄청났을텐데라며 말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환상적인 생각일 뿐인가? 누구에겐가 며칠 전 있었던 얘기를 들었다. 며칠 전 양복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외국이 두명이 오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뉴질랜드인 라오니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라오니에게 명함을 하나 주면서 무슨 일이 있거던-울산시의 퇴거명령으로 인한- 전화하라고 얘기하더란다. 그 명함에는 뉴질랜드 대사라고 찍혀 있었다고 한다. 라오니도 놀라고 그 광경을 본 다른 이들도 놀랬다고 한다. 대사가 직접 찾아와 직접 안부를 묻고 직접 명함을 주며 무슨 일이 있거든 연락하라는 이 일은 생각만 해도 환상적인 아니 뿌듯한 애국심이 생겨나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인간과 인간, nation과 national의 신뢰의 기본이기도 할 것이다. 그날 저녁 두명의 새로운 그린피스 자원봉사자가 도착했다. 어둠이 내린 장생포는 싸늘하다. 바다가 바로 옆인 이곳은 바람에 바다냄새가 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바람을 하얀 천에 걸러보낸다면 아마도 천은 소금을 머금은 염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깊은 곳에서 우리가 찾아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들인지 모른다. 마치 우리 자신의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희망과 꿈처럼. 독일친구 얀이 나에게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면서 우언가 물어본다. 얀의 노트북은 보통 노트북의 3분의 1 밖에 안되는 크기이다. 세로 폭이. 대신에 화면에서 스크롤 바를 많이 내려야했지만 휴대하기에는 정말 좋을 듯 했다. 그가 보여준 모니터 화면에는 웹사이트가 접속되어있었는데 낙산사 화재 때의 사진이 있었다. 그는 낙산사 화재가 궁금했었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낙산사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불이 났는지. 종이와 펜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한다. 한반도를 그리고 정 중앙에다가 가로로 홱하니 선을 긋고 선 아래 강원도 지점 쯤에 점을 찍고 그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뒤통수를 때렸다. 낙산사의 위치를 알려주기위해 나도 모르게 그림에다가 삼팔선을 긋고 south와 north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아래쪽에 south korea 윗쪽에 north korea를 적어놓은 그 그림을 보고 무의식속에 자리한 의식적으로 주입된 무의식들이 무의식적인 행동 속에 무심하게도 나온다는 걸. 왠지 서럽기까지 했다. 분단의 아픈 철책선을 아무 생각도 못한 체 홱 그어버린 내가. 그것도 독일인 앞에서. 그 서러움을 꾸욱 누르고 낙산사 화재를 그림과 함께 손짓, 몸짓으로 설명해준다. 밖은 눈부시게 환하다. 오월의 햇살이 대지 위의 모든 곳에 어둠을 없애버리겠다는 냥 그렇게 환하게 수직으로 낙하해오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 눈부신 햇살을 뒤로 하고 고래 대사관으로 들어온다. 나는 그때 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모든 인간은 국적이 아니라 인간으로써 똑같다는 것을. 어제 저녁 늦게 도착한 자원봉사자 중 여자가 고래대사관으로 들어섰다. 정말이지 그녀의 뒤로 후광이 보일 정도였다. 그녀는 정말이지 인형같은 여자였다. 그때 고래대사관 안에서 각자의 맡은 바 일을 하고 있던 각국의 자원봉사자들 눈이 그녀를 향해 있었다. 나는 그때 그들의 눈에서 강렬한 불꽃이 튀는 걸 보았다. 동공이 커지면서 말이다. 정밀이지 1초도 안되는 찰나였을 것이다. 예전의 미국 영화 짐캐리 주연의 '마스크'에 나오는 마스크가 우리에게 있었다면 우리 모두는 늑대가 되어 아~우 하며 울부지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미인이었다. 의아한게 있다면 저렇게 미인인데 코에 피어싱을 왜 했을까였다. 그년는 슬로바키아인이었든 거 같다. 체코였든가? 사실 그 전날에 온 두명의 자원봉사자는 한명은 체코, 한명은 슬로바키아였는데 자꾸 헤깔린다. 예전의 나라 이름때문에. 체코슬로바키아. 이글을 보고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분리 독립했다. 슬라브족 여성이 예쁘다고 하더니 그 말이 거짓은 아닌 듯 했다. 그 아름다운 여자는 스푸투카라는 닉네임을 가졌었는데 본명이 뭔지를 까먹어버렸다. 왜 닉네임을 얘기했는지 그리고 그 닉네임이 어떤 의미인지를 물어보고 싶었는데 질문보다 답변이 엄청날 거 같아서 못 물어봤다. 그리고 체코의 남자가 자원봉사자로 왔었는데 매릭이라고 하였다. 이곳에 있으면서 촬영을 담당하기로 되어있단다. 꼭 맥가이버랑 많이 닮았다. 차림새도 얼굴도. 그리고 술 좋아하고 담배 좋아하게 생겼다. 그날 저녁에 또 두명의 자원봉사자가 도착했다. 멕시코와 네덜란드에서 온. 멕시코인은 여자였는데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네덜란드 친구는 A였는데 아저씨 스타일이다. 머리도 좀 벗겨지고. 울산사의 퇴거명령 기한 날짜가 다가오면서 알게 모르게 긴장감이 돈다. 모두들 표현을 안하지만 긴장감이 얼굴에 묻어 있다. 다음날 여자 통역사가 고래 대사관에 있었는데 퇴거명령으로 인한 물리적 충돌이 있을까 싶어서 일찍 내려왔다고 하였다. 사실 분위기는 험악했다. 마을 주민이 와서 왜 고래 못잡게 하느냐 여기서 하지말고 일본에 가서 해라 시에서 철거안하면 우리가 한다 등등 분위기 게이지가 급상승되고 있었다. 그날 점심은 나와 여자 통역사가 만들기로 했다. 내가 그곳에서 특별히 도울 일이 없었기에 설겆이를 한번 해볼까 하다보니 자연스레 점심도 준비하게 되었다. 설겆이 중에 그녀와 만은 얘기를 나누었다. 직장은 어디세요라고 물었더니 지금은 논다고 얘기한다. 그럼 어느 학교 출신이냐고 물었더니 얘기하기를 꺼려한다. 내가 집요하게 물어보니 얘기를 한다. 서울대 출신이라며. 그린피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기까지 왔다고 했었다. 농담조로 서울대 출신이 여기서 뭐하냐고 얘기했더니 그녀는 웃으면서 그러게 말이에요 라고 넘겨버린다. 이래저래 얘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맑스의 얘기도 나오게 된다. 맑스의 얘기가 나도 모르게 나와버렸는데 그녀도 그 얘기를 학교 다닐 때 보고 친구들과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맑스와 실제 맑스가 다르다라는 얘기를 나누었다는 말을 한다. 오훗. 좀 틀리다. 이 얘기를 내가 지금껏 만난 몇몇 사람들에게 해보았지만 모두 나를 통해서 처음 들었다고 했었는데 그녀는 학교 다닐 때 봤었단다. 나는 약간은 도취되어 부자들은 뭐하는지 몰라 이런 곳에는 부자들의 자녀들이 와야하는거 아닌가라고 얘기한다. 그때 그녀의 눈길을 느꼈다. 그녀가 제법 사는 집의 딸이라는 걸. 점심은 김치 볶음밥으로 하기로 하고 그녀에게 양파를 좀 손질해달라고 부탁했더니 한번도 밥을 해먹은 적이 없단다. 아니 그럼 학교다닐 때 객지생활을 했는데 그때 어떻게 했냐고 물어본다. 어머니가 주말마다 반찬을 가지고 오셨다고 한다. 그래도 설마 양파정도 손질 못할까 싶어 한번 해보라고 했더니 양파를 반으로 만들어버렸다. 헛! 손질은 내가 할테니 씻기만 씻어달라고 부탁한다. '아무리 유수의 재원이라도 못하는 게 있는 듯 하다.'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채식주의자들도 있고 또한 그린피스에서 고래보호의 차원과 더불어 바다고기를 먹지 말자라는 자율적 지침이 있어서 생선이 들어간 음식을 안먹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김치 볶음밥을 뷔페식으로 다 따로 접시에 담아 입맛에 맞게 섞어먹도록 해야만 했다. 김치볶음 따로 밥다로 감자 따로 이런 식으로. 열심히 볶고 썰고 하는데 라오니가 와서는 도와주까라고 물어본다. 그럼 밥을 뜸 들이는 중인데 잘보고 있으라고 몸짓으로 말해준다. 오케이오케이라고 말하던 라오니가 밥뚜껑을 확 열어버린다. 일순간 오~노 라고 외치며 다가가 얼릉 뚜껑을 닫는다. 라오니가 어쩔줄 몰라하기에 괜찮다고 연신 통역사에게 애기한다. 라오니, 그 친구 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입이 심심하면 김을 꺼내들고 베리굿이라며 맛있게 먹는다. 정말이지 그 친구에게 김 한 박스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 친구는 개고기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얘기하였었다. 맛이 어떤지 궁금하다며. 잘못하다간 뉴질랜드에 개가 씨가 마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들은 좀 특이한게 하나 있었는데 우리네 같으면 밥때되면 다같이 먹을려고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은 그냥 밥먹으라고 얘기만 해주고 억지로 데리고 오지는 않았다. 거참 희안하게 보였다. 모두들 내가 만들어준 김치볶음밥을 진지하게 음미하면서 먹는다. 나도 진지하게 먹는다. 맛있다고 얘기한다. 뿌듯하다. 한편으로는 이보다 더 맛있는 우리네 요리를 먹여줬으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이 남기도 했었다. 며칠 이곳에서 애네들이 해주는 점심 혹은 저녁을 먹어봤는데 이건 완전 국적이 다국적이다. 무슨 음식인지 어디 나라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걸 이주동안 계속 먹는다면 쓰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밥을 먹는 그들을 보며 김치를 안먹는 친구들이 있기에 통역사에게 물어본다. 왜 김치를 안먹냐고. 김치에 들어가는 액젓때문이라고 통역사가 얘기해준다. 아! 피싱 어쩌구 저쭈구 얘기하는 게 액젓을 말하는거였구나 라고 혼자 생각하였다. 하긴 액젓도 생선이긴 하지. 그렇게 점심이 끝나고 모두 밖으로 나가 따뜻한 햇살이 내려쬐는 오후에 일종의 티타임같은 시간을 가졌다. 햇살아래 옹기종기 모여 맥주를 마시며 서로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영어로. 나는 그냥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맥주를 들이킨다. 그러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그녀에게 몇살인지 물어보았다. 대략 22살 정도 생각했었는데 28이란다. 너무 놀라서 리얼리?라고 물어보니 그녀가 조금은 실망스럽다는 듯 길게 얘기한다. 통역사에게 무슨 얘기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너무 어리게 보이는게 싫단다. 그래서 코에 피어싱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슬로바키아 그린피스의 캠페이너라고 한다. 우리나라 식으로 한다면 간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자력이 그녀의 담당이라고 한다. 그 캠페이너의 지위를 잠시 접고 한국에 자원봉사자의 자격으로 왔다고 한다. 그녀가 새롭게 보였다. 그녀가 음악을 들을 때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하고 다리를 박자에 맞춰 흔들기도 하는 모습을 보아왔던 터라 어리겠구나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그만큼이나 열정적이며 에너지가 넘치고 또한 자신의 지위를 잠시 접고 첫 출발선에서 다시 설수 있는 용기있는 인간이었다. -저녁식사- 주말에 자원봉사자로 온 어머니 한분과 함께 점심을 준비하고 있는데 카나다에서 온 원어민 교사가 물어본다. 저녁 준비를 할려고 하는데 언제쯤이면 주방이 비겠냐고. 자신이 준비하려는 저녁이 족히 4시간은 더 걸린다면서. 볶음밥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곧 주방이 빌거라고 통역사에게 얘기해주었다. 그녀는 알았다면서 저녁 식사를 위해 찬거리를 사러 간다면서 나간다. 의아한 생각이 든게 무슨 저녁을 하기에 4시간 전부터 준비하려고 하는걸까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외국 음식에 4시간 전부터 준비해야하는게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말이면 원어민 교사와 한국분 어머니가 자원봉사를 하러 오곤 했었는데 그 카나다 아가씨의 사연은 나를 좀 울적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카나다에 있을 때부터 환경에 대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한국으로 원어민교사로 왔는데 여기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 한 환경단체에 e-mail과 전화통화를 했었다고 한다. 자신도 환경단체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그 단체로부터 소식이 감감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 일로 무척 상심했었는데 (통역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좌절했다고 한다.) 마침 그린피스가 한국에 와서 그 기분을 깨칠 수 있었다고. 그녀는 주말마다 이곳 캠프로 자원봉사를 온다고 하였다. 언어의 장벽은 이곳저곳에도 작용하나보다. 한국인으로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 쳐박혀 있는걸까? 대기업 사무실에 쳐박혀 있나? 아님 out of south korea로 향하고 있나? 저녁 찬거리를 사온 그녀는 열심히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혼자서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에 고수의 냄새가 풍긴다. 시간이 흐르고 기다리던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자기가 먹을 만치만 접시에 들어서 모두들 둘레둘레 앉는다. 조용하다. 정말 쥐죽은 듯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다. 이 친구들 밥먹을 때 꽤 시끄러웠는데 지금 이 시간만큼은 조용하다. 모두 입안의 음식에 할 말을 잃은 듯 아니아니 정신을 잃은 듯 하였다. 정말이지 그녀가 4시간 넘게 준비한 스프는 내가 가지고 있던 스프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내가 먹어본 스프 해봐야 일회용 즉석 스프와 경양식에서 나오는 전식 정도였는데 그 스프들과 비교가 안되는 정말 요리였다. 우~ 지금껏 먹어본 스프들은 스프도 아니구나. 스프가 이런 맛일줄이야. 우~. 한국식 요리로 따진다면 갈비탕, 곰탕 하여튼 스프의 재료들이 푸욱 고아졌다고나 할까. 하나둘씩 접시를 내리고 한동안 침묵이 또 흘렀다. 모두들 그윽한 눈으로. 영화의 한장면 같았다. '쇼생크 탈출'에서 수감자들이 건물 옥상에서 병맥주를 한모금씩 들이키며 행복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그 장면처럼. 얼마지않아 그녀에게 잘 먹었다, 맛있었다라고 한마디씩 건네준다. 나 역시 너무 맛있는 스프에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려고 통역사에게 물어 그녀에게 얘기한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음식은 정성과 사랑이 담겨야 제 맛을 내는 듯 하다. 그리고 외국에도 몇시간씩 고아내는 음식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켈리 러시아 passport 스위스 담배 김치 원어민 교사 사진(스코틀랜드) |
2006/04/11 22: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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