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밤따러 간 날

황새울 2006. 7. 5. 19:26


"밤따러 간 날"


어머니와 함께 밤따러 가기 위해 버스 길에 올랐다.
몇 해 전 경주시민이었을 때가 있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경주 외곽지역에 이사해서 살았었는데
그 근처에 더 이상 밤농사를 짓지 않는 손놓은 밤산이 있어
때되면 밤따러 가곤 했었는데 문득 그때가 생각나서
어머니께 밤따러 가시지 않겠냐고 은근히 물었더니
어머니가 좋다고 하시며 가자신다.

태풍 나비가 스쳐 지나간지라 밤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기대하며
버스 밖 세상을 두리번거린다.
태화강이 둔치까지 넘었는 줄 알았는데 기실 그렇지 않았다.
군데군데 강 언저리만 물이 넘나든 흔적이 자리할뿐.
언론은 언제나 내가 바라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 살았던 동네에서 버스에 내려 걸어간다.
어머니께서 초등학교를 가로질러 가자기에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아이들 서넛은 그네에 올라서서 하늘 향해 노를 젓고
저 편 구석에서는 큰 아이 작은 아이 뒤섞이어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들이 고즈넋하게 다가온다.
도시와 같은 학교인데도 내게 풍겨오는 향기는 도시향기가 하나도 없다.
향긋한 향이 내눈에 자맥질 한다.

그렇게 동네 어귀를 나올 때 물이 불어 강을 건널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거센 물결의 황토빛 물살은 마치 황하를 연상케 했다.
강둑을 따라 큰 다리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청하는데
오른쪽 고추밭에서 후다다닥거리며 풀들이 휘청거린다.
동네 개인가 싶었는데 공간과 공간 속의 에너지는 개보다
더 다급하고 위기스럽게 나에게 다가왔다.
강둑 길로 그 정체가 나타났는데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생후 1년이 채 안되어보이는 아이가 튀어나왔다.
겁을 잔뜩 먹은 눈과 온 몸이 물에 젖어
채 마르지도 않은 모양새로 보아하니 이번 태풍으로 인한 급류를 맞았나보다.
녀석은 후다다닥거리며 왼쪽 강둑으로 내려가 풀섶에 몸을 숨긴다.
이렇게 가까이서 아이를 본 적이 있었던가?
녀석의 엄마는 어디 있을까?
얼마만큼 떠내려온 걸까?
센 물살에서 정말이지 죽을 고비를 넘겼구나.
이런 생각들이 들어 좀 자세히 볼까 싶어 다가가려 했더니
아이는 아직 긴장과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듯 풀섶으로 몸을 숨긴다.
괜스레 더 다가갔다가 아이가 더 놀라할까봐 가던 길을 재촉한다.

동물 구조대에 연락해야 하지 않을까?
경주나 울산에 동물 구조대가 있든가?
인터넷으로 접속해서 알려야하나?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인터넷에 구조를 청하라고 얘기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그만두라시며 전화를 가져가신다. 전화세 나온다시며.
내 전화가 아니니 할 수 없다.
하긴 구조대에 연락한다고 그들이 올까?
그들이 온다고 한들 저 아이의 나고 자란 곳을 찾아줄 수 있을까?
그 아이의 엄마를 찾아줄 수 있을까?
라는 불신의 부정적 생각이 들었다.
죽음의 고비를 뚫고 살아난 아이니까
지금부터도 잘 해낼거야라고 마음의 에너지를 전해준다.
강만 건너면 산이 가깝고 그 산들이 주욱 연결되어있으니
충분히 스스로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나를 자위한다.

"엄마, 동네 사람들이 쟤 발견하면 잡아 먹을까?"

"잡아먹겠지, 뭐"

설마라고 생각은 해보지만 걱정은 된다.
어쩌면 동네 사람들이 더 잘 보살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예전같이 그렇게 먹고 살기 급급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정력에 좋다는 둥 하여 마구잡이로 잡아먹던 시대도 아니니...나만 이렇게 생각하나?

그렇게 걱정을 적당히 반쯤 접어두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논에 벼들이 그렇게 많이 넘어지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벼 품종이 다른 걸 심었는 것 같다고 하신다.
소위 바람에 잘 자빠지지 않는 종들로.
산으로 접어들어 산자락에 접한 논들은 논두렁이 터져나간 모습이 보인다.
나중에 외갓집에 들러서 외삼촌에게 들은 얘기로 방천났다고 하더라.
논두렁이 터진 걸 방천났다라고 하는 건 처음 알았다.
논두렁이 터진 아래에 돌무더기들이 흩어져 있다.

"엄마, 논두렁에 왜 저케 돌이 많노?"

"돌로 쌓아서 흙으로 덮는다 아이가. 안그러면 비 많이 오면 다 무너지거든"

아, 그런거였구나.
산자락에 있는 계단식 논들이 그냥 세월을 견뎌내는게 아니었구나.
저렇게 속에 차곡차곡 돌알들을 품고 있은 거구나.
저렇게 차곡차곡 돌알들을 쌓은 정성을 품은 채 견뎌내는구나.

그렇게 논두렁을 걸어 밤산으로 들어선다.
밤이 지천에 널려있다.
지금까지 몇번 왔었지만 이렇게 많이 밤들이 땅에 자리한 건 처음 본다.
밤을 까기 위해 달려들면서 미국의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문득 생각나더라.
그리고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에 나오는 단편소설도.
끝없는 대지를 달려 깃발을 꽂은만큼 자기 땅이 된다는...

여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마 밤나무 통째로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전에 왔을 때 어느 누군가가 밤을 따기 위해 전기톱으로
한아름이나 되는 밤나무와 가지를 서너군데씩이나 베어 놓은 걸 봤었다.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발전할 수도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랄한 경우였다.

밤들이 설익었다.
아직 갈색 옷을 입지 않고 초록과 아이보리 색을 입은 밤들이
밤송이에서 부끄럽다는 듯 나오려하지 않는다.

"일주일만 더 늦게 태풍이 왔어도..."

어머니는 아쉽고 아깝다는 듯 연신 얘기하신다.
먼저 떨어져버린 밤은 아직 알이 제대로 차지 않고 밤맛도 덜했다.
햇살만 잘 비추어준다면 어느 정도까지 익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밤나무에 달려 있을 때보다 못하다고 어머니께서 귀뜸해주신다.
어머니 말씀을 듣고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송이에 상처가 있거나 물이 차면 썩는다고 하니 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밤나무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너무 큰 에너지가 다가와
아무리 그 에너지를 효율적인 미분법으로 적용하려 했지만
그 용량이 워낙 커서 수용용량이 넘어서니 어쩔 수 없이
밤송이를 털어낸 것이지 않겠는가

그도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이다.

밤나무 아래 군데군데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밤송이들이 얼마나 꽈악 움켜쥐었으면
나뭇가지와 함께 부러져 떨어져있었다.

그 모습이 애잔해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모든 밤송이들이 저렇게 꽈악 움켜잡고 놓지 않았더라면
밤나무 자신이 넘어졌을 지도 모른 일이지 않을까.

어쩌면 삶이란 것도 움켜쥘 때가 있고 놓을 때가 있는 것 같다.









 

 

 

2005/09/08 15: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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