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그들과의 반나절 #2 다음 날 오후무렵 고래 대사관을 다시 찾아갔었다. 그런데 이게 뭔일이더냐 어제의 참한 통역사 대신 남자가 있는 게 아닌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자 통역사는 주말에 그 남자 통역사는 주중에 일한다고 한다. 오호애재라 이런 안타까운 일이. 뭐~ 꼭 닭을 쫓기위해 온 건 아니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했거늘. 그린피스 애들 중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친구가 나더러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묻기에 그냥 자원봉사자라고 통역사에게 얘기해준다. 그 나이든 친구는 눈치로 봐서 전면에 서지않는 배후 세력 같았다. 그 친구, 볼런티어를 연신 외치더니 나더러 악수를 청하며 좋아라 한다. 나도 왠지 으슥해진다. 영어가 짧은 나는 고래 대사관에 앉아 그곳에 비치된 책자를 보거나 한국인 통역사랑 얘기를 하곤 했다. 간혹 고래 박물관에 왔다가 아직 개장되지 않아서 두리번거리다가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책자를 나눠주기도 하고 고래보호에 대해 간단히 얘기하기도 하였었다. 그 남자 통역사는 선교사가 되고 싶어 했었다. 이곳에서 어떻게 일하게 되었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N.G.O 활동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선교활동과 N.G.O활동이 비슷하며 또한 배울 점이 많은 거 같다면서. 예수의 가르침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였다. 예수! 나는 예수를 잘 모른다. 성경책을 좀 읽어보긴 했었다. 세계의 베스트셀러라는 얘기도 있고 또한 미국 영화의 기본에 깔린 게 성경내용이기도 하니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했다. 하지만 좀 읽어보고 아직까지 봉인 중이다. 무슨 애들 이름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삼국지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민중 신학에서는 예수를 혁명가로 본다는 글을 언젠가 읽은 적이 있었다. 만인의 평등을 위해 혁명의 길에 뛰어든 예수. 하지만 이 나라에서의 예수는 왠지 그 예수가 아닌 것만 같다. 가건물에 들어선 교회가 3~4년이면 새 건물을 짓고 10년이면 5~6층 상당의 성을 만드니. 그 성은 예수를 위한 성인가? 그 성을 추종하는 자들을 위한 성인가? 남자 통역사를 이래저래 귀찮게 하게 되었다. 언제부터 일했냐 쟤는 어느 나라 애냐 등등. 영국, 미국, 뉴질랜드, 독일의 친구들이 다 있었다. 오훗, 완전 다국적 그린피스다. 실제 그린피스 대원은 영국과 미국 친구이고 나머지는 자원봉사자라고 한다. 오훗, 자원봉사자! 그들은 2주 단위로 교체되며 교통비가 지급된다고 통역사가 귀뜸해주었다. 그리고보니 돔형 천막인 고래 대사관 안에는 서너대의 노트북에 인터넷이 연결되어있다. 오훗, 역시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단체는 좀 틀린 듯 하다. 자원봉사자에게 교통비-사실 교통비라고 하면 아주 작은 느낌으로 전해진다. 여기서 교통비는 자기 나라에서 출발하여 이곳 고래 대사관까지 오고가는 교통비이다. -를 그리고 캠프에 인터넷까지. 그러나 이곳 생활에서 따로 지급되는 돈은 없다고 한다. 음식은 자율 시스템에 의해 2인1조로 만들어 먹고 잠은 1인용 텐트에서 잔다고 한다. 고래 대사관 뒷쪽으로 예닐곱개의 텐트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마치 에베레스트 등반대의 베이스 캠프 같은 느낌이었다. 이곳까지 와서 텐트에 지내면서 자원봉사를 한다는 게 그것도 2주 동안을.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그들이 조금 안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고보니 그들 모습이 정말 등반대처럼 부시시하다. 씻는 건 어떻게 하냐고 통역사에게 물어보니 한번씩 동네 목욕탕에 간다고 한다. 학창시절이 생각났었다. 출범식이다 뭐다해서 각지의 대학에 가서 강의실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 하나 달랑 깔고 잤었던. 누군가 그런 말을 한다. 외국에는 회사에 휴가제도가 잘되어 있어서 2주정도 휴가를 내어서 온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2주정도 휴가를 준다면 이렇게 먼곳까지 와서 2주의 텐트 생활과 국적없는 음식과 언어권이 틀린 다른 사람과 단체생활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것도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이곳 장생포 같은 곳에서. 그리고 철거해버린다고 으름장을 놓는 울산시와 시에서 철거안하면 동네 주민들이 철거해버리겠다고 엄포하는 험악한 분위기의 이곳 같은 곳에서. 사실 그들과 열흘가량 지내면서 누군가, 그것도 젊은 한국 청년이 텐트를 메고 와서는 고래를 사랑하여 그린피스와 함께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라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그건 단지 환상일 뿐이었다. 고래 대사관으로 사용되는 돔형 천막 외에 천막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곳은 식사와 회의 그리고 휴식의 공간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보면 어수선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자유로운 것 같기도 한 묘릇한 공간이었다. 흔히 보는 미국 영화에 잠시 나왔다 사라지는 인물의 집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바닥은 땅바닥이었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하였다. 아! 다른 하나가 더 있었다. 한쪽에 커다란 화이트 보드가 걸려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는 hello=안녕하세요 와 순번을 적어놓은 이름들 그리고 여타 글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곳의 가재도구들 소파, 찬장 등등을 모두 이곳에서 주워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온 것은 천막의 벽을 만들고 있는 일종의 공사용 보온 담요 뿐. 예전에 본 어떤 다큐물이 생각나게 하였다. u.s.a의 한 사막 지역에 일종의 공동체 형식의 마을?건물? 하여튼 그곳을 보여준 다큐물인데 그곳에서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주지를 재활용품 즉 남들이 버린 물건들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공동체가 아주 열악한 환경의 생활 터전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곳은 태양열 전지로 자가발전하고 지하에 거대한 용수탱크로 냉방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고도의 기술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한켠에 있는 주방에 가서 이리저리 살펴본다. 사실 그들은 뭘 먹을까라는 호기심이 들기도 하고 먹는 건 제대로 해먹나하는 기우가 들어서이기도 했다. 살펴보니 비슷하다. 꼭 학창시절 여느 자취방의 부엌과 다를 바가 없다. 포장지 채로 남겨져있는 야채들 그리고 일회용 음식들 그리고 간장, 식용유, 소금 등등 개를 옷 안에 넣고 하이라고 인사했던 친구가 뉴질랜드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라오니 라는. 그 친구는 머리도 노랗지만 속눈썹도 노랗다. 어렸을 적 귀여움을 많이 받으면서 자랐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낙천적인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볼런티어를 외치면서 악수를 청하던 나이가 많아 보이던 그 배후세력은 정말이지 나이가 많으며 미국 친구이며 실제로도 그린피스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친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담 이라는. 그 친구는 연륜만큼 속내를 잘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의 냄새가 나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실제 이곳의 책임을 맡고 있는 그린피스 대원으로 영국인 짐이 있었다. 그 친구 머리를 싹 밀었다. 개인 취향인지 아니면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은 짜증이 섞인 듯 하기도 하고 2주동안의 피로가 누적된 듯한 친구가 있었는데 제임스라고 미국인이었다. 그 친구의 찢어진 청바지가 인상적이었다. 아, 그 친구 보기와는 다르게 채식주의자란다. 고기 좋아할 거 같든데. 그리고 눈빛이 무언가를 찾아내겠다는 듯이 반짝거리는 친구가 있었는데 독일 친구 얀이다. 훤칠한 키에 사실 다들 나보다 컸지만. 마치 대나무 밭에 핀 버섯같았다. 내가. 아담과 짐을 빼면 모두가 자원봉사자인 셈이다. 어둠이 내리자 고래 대사관에 불이 켜진다. 촛불? 랜턴? 아니다. 그 친구들 디젤용 자가 발전기를 설치해두고 있었다. 형광등이 켜진다. 시내버스가 끊기기 전에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모두에게 바이라고 그리고 씨 유 넥스트라고 말해주고 버스 승강장으로 향한다. 두달전부터 어머니가 하시는 노점상에 와서 뒷일을 거든다. 노점상하면 종류가 많지만 그렇게 돈을 끌어모으는 노점상이 아니라 근근이 돈을 버는 분식업이다. 백수인 아들이 제 입에 풀칠할 꺼리는 찾지 않고 양놈들에게 가서 도와준답시고 시간 보내는 게 어머니는 달갑지 않으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싫으신 내색을 하시지 않는다. 어쩌면 어머니는 아들이 뭔가에 집중하려고 한다는 게 좋으셔셔 싫은 내색을 하시지 않으셨다는 생각을 한참이 지나고서야 하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버스는 우리를 집으로 데려다 준다. 언제나 그렇듯이 버스는 우리를 다른 곳으로도 데려다 준다. 언제나 그렇듯이 버스는 우리를 오고가게 도와주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건 우리의 용기이다. |
2006/01/24 00: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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