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손을 내미는 것은 인간의 의무, 내민 손을 따뜻이 잡아주는 것도 인간의 의무

황새울 2006. 7. 5. 19:48

 


"손을 내미는 것은 인간의 의무,
내민 손을 따뜻이 잡아주는 것도 인간의 의무"



여러분 죽지마세요.
이제부터 당신이 당신의 생명 에너지를 스스로 꺼지말아야되는 이유를 알려드릴게요.
아주 긴 얘기가 될테니 쉬엄쉬엄 읽어나가세요.

내가 지금껏 살아온 삶이 얼마되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잃어버렸답니다.

학창시절 한 선배는 자취방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이 세상을 떠나버렸답니다.
그렇게 친하지도, 술자리를 자주 같이했던 선배는 아니었지만
그의 기억은 또렷하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과총회는 형식적으로 치루어지는 시간이었답니다.
언제나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돈계산들.
그 많던 과 학생들 속에서 그 선배는 질문이 있다면서 일어났답니다.
그리고 칠판에 쓰여지지 않은 지출부분을 얘기하며
그 일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과총무, 과학회장 모두
얼굴이 붉게 상기되며 연신

'미안합니다. 착오가 있었나봅니다'

라며 말했었답니다.
그 선배와 과총무, 과학회장은 친한 동기 사이였는데 말이죠.
그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 공과 사는 달라야해. 저 선배 대단한 선배다'

라고 속으로 말했었답니다.
그렇게 내 기억 속 한부분을 차지했던 그 선배는 홀연히 떠나버렸답니다.
할 일이 아주 많았을 선배였는데
지금 이 사회에서 정말이지 할 일이 많았을 선배였는데 말이죠.


또 한명의 선배가 있었습니다.
한달동안 합포만의 검은 바다 속을 헤매다가 물 위로 떠오른 선배.
총여학생회장이었던 그 선배는 그렇게 한달동안 외로움 속에 묻혀있었습니다.
마산 MBC는 애정행각에 의한 실족사 같다라며 언론보도를 했었답니다.
그 어이없는 소리에 보도 항의를 위한 시위가 MBC 앞에서 벌어졌답니다.
아스팔트 위에 앉아 시위를 하던 중 그 선배가 생각났었답니다.
힘든 일이지만 늘 웃으려고 애쓰던
그렇게 학내를 돌아다니던 그 선배가 보이지 않았을 때

'잠수탔나봐' '왜'

그렇게만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인가 한달만에 물 위에 떠올랐습니다.
그 한달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한달동안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한달동안을 생각하다 참지 못하고 울음이 터져버렸습니다.
저 언론사들이 무엇을 안다고 제맘대로 떠벌리는지 분해 울음이 터져버렸습니다.
옆에 앉아있던 후배 녀석이

'선배, 선배 괜찮아요?'

'응,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내 울었습니다.
그렇게 그 선배는 떠나버렸답니다.
정말이지, 힘들어도 예쁘게 웃을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정말이지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한명의 후배가 있었습니다.
모꼬지 간다며, 동해안으로 동아리 모꼬지 간다며 즐거워하던,
모꼬지 갔다와서 중국에 한번 가보고 싶다며 얘기하였던
그리고 PD와 NL의 문제점들을 같이 얘기하였던 후배가 있었습니다.

'잘갔다와라'

'네. 선배'

'안전사고 조심하고'

'네'

그러던 후배가 한줌의 재로 돌아왔습니다.
해수욕장에서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
동아리 아이들이랑 천막을 들고 있다가 그렇게 감전사되었습니다.
그렇게 한여름에 뜨거운 불 속에서 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뿐인 자식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울부짖음에 가슴이 찢어졌답니다.
떠나보내지 못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에 가슴이 미어졌답니다.
녀석은 그렇게 떠나버렸답니다.
모두의 기억에서도 시나브로 떠나버렸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알고 누군가를 도울 줄 아는 녀석은 그렇게 떠나버렸습니다.
정말이지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젊음이었는데 말이죠.


한명의 형이 있었습니다.
시립도서관의 청년독서회 활동을 하였던 한명의 형이 있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며 틈틈이 독서회 활동도 하고 회장직도 맡았었던
그 형은 어느 날인가 급성 백혈병으로 떠나버렸답니다.
후진국형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백혈병은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병이었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헌혈증을 모아 핏값을 대신하는 일이었답니다.
이미 졸업한 학교를 찾아가 후배들, 선배들, 동기들에게 헌혈증을 부착했었답니다.
그렇게 80여장의 헌혈증을 모았지만
단 한장의 헌혈증도 사용해보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버렸답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살아가던 그 형은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버렸답니다.
정말이지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부지런한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한명의 선배가 있었습니다.
대학 생활때 내 자취방에 처음 찾아와 같이 술을 마시며
수많은 얘기를 나누었던 그 선배는 떠나버렸습니다.
한 아이의 아빠였고 남편이었던 그 선배는 어느 날인가
친구들과 집에서 한잔하려고 아파트 베란다를 넘어가려다
발을 헛디뎌 떠나버렸습니다.
그렇게 똑똑하던 선배가 그날은
왜 그런 무의미한 일을 했는지 그렇게 떠나버렸습니다.
다시는 아빠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사람들의 슬픔에 갇혀 있었습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남편을 형수는 초점잃은 눈으로
영정만 눈시울 붉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공원가는 영구차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무심한 세상에 내내 울었습니다.
죽어야될 인간들이 죽지 않고 죽어서는 안될 사람들이 죽는다며 내내 울었습니다.
그렇게 떠나버렸답니다.
그렇게 똑똑하던 선배가 그렇게 떠나버렸답니다.
정말이지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한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동기이자 고등학교 동기였던 녀석은
어릴적 소아마비로 두다리가 불편했었답니다.
가난하지만 않았더라도 불편하게 되지 않았을
그 친구는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가난을 탓하지도 않았답니다.
수학을 잘했던 녀석은 나랑 곧장 말동무를 했었답니다.
내 눈은 그 친구의 두다리보다 그 녀석의 반짝이는 눈을 더 자주 바라보았답니다.
녀석은 뛰어다니는 게 아주 불편했답니다.
하지만 걸어다닐 때는 늘 얘기하느라 바빴답니다.
그랬던 녀석은 대학에 들어가
그것도 자신이 좋아했던 수학과 밀접히 관계가 있는
물리학과에 들어가서는 오래지 않아 떠나버렸답니다.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내던졌답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다른 친구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되었답니다.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다리가 불편했던 녀석이 달려오는 기차에 뛰어들기 위해 얼마나 뛰었을까.
왜 아무도 녀석을 잡아주지 못했을까
왜 녀석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며 얘기하지 않았을까
왜 왜 왜
그러다 나는 왜 그를 못만났을까라며 슬퍼했었답니다.
한번이라도 녀석과 대학생활에 대해 얘기를 나눌수 있었더라면...
녀석은 그렇게 떠나버렸답니다.
외로움 속에서 녀석은 그렇게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그렇게 반짝이던 눈을 가졌던 녀석은 그렇게 떠나버렸답니다.
정말이지 지금 이 사회에서 필요한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이였는데 말이죠.


한명의 후배가 있었습니다.
여동생의 대학 선배이자 자취방 방순이였던 그 아이는
언론에서 미친 듯이 떠드는 beautifulday 전날에 떠나버렸답니다.
우울증으로 인해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난간에서 떠나버렸답니다.
용감하고 쾌활했던 그 아이를 '왕팔뚝'이라고 불렀었는데 그렇게 떠나버렸답니다.
여동생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간 안락공원에서
그 아이는 불 속에서 재가 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슬펐답니다.
그 슬픔때문에 이렇게 여러분에게 긴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졸업을 하고 캐디를 하던 그 아이는 떠나버렸답니다.
영정을 모시고 그 아이가 일했던 컨트리 클럽을 돌아 나올때
캐디동료들이 주욱 일렬로 서서 그 아이를 보내주었답니다.
슬픈 눈물을 떨구면서, 경비 아저씨의 슬픈 경례를 받으면서.
고향인 지리산자락에
그 아이의 재를 뿌리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에 이를 악물어야 했습니다.
슬픔에 잠긴 그 아이의 여동생, 친구, 선배, 동기, 후배 그리고
여동생이 있는 그곳에서 이를 악물어야 했습니다.
언젠가 여동생이

'언니, 영화나 드라마 한 십분 정도 보면 줄거리 다 알더라. 이렇게 이렇게 될거야하며'

라고 얘기했을 때
언제 만나게 되면 글을 한번 써보라고 말해줄려고 했는데 그렇게 떠나버렸습니다.
말해주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에게 긴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스스로 생명에너지를 꺼지말아야되는 이유를 알려드릴게요.

당신의 기억은 어느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자리합니다.
그 기억들은 당신과 같이하지는 않지만 같이할 미래의 공간까지 준비되어있답니다.
먼 훗날 길거리에서 스치더라도

'어, 저친구'

이런 식으로 말이죠.
또한 먼훗날 길거리에서 만나서

'이야, 반갑다. 잘 살고 있지?'

라며 그 미래의 공간 속에 기억을 차곡차곡 담아둡니다.
하지만 당신이 홀연히 떠나버리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당신의 공간은 영원히 비어진 채 시간이 흘러간답니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 당신의 빈공간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크나큰 슬픔으로
그 누군가를 시나브로 슬프게 한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빈공간은 점점 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기억이 잊혀져도 그 슬픔은 지워지지 않는답니다.
그 슬픔이 기억의 빈공간에 차있기때문이죠.
그래서 당신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이들이 슬퍼지는 것입니다.
그 슬픔을 당신이 책임지지 않기에 떠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분명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아름다운 건 그 어딘가에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이 당신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희망의 씨앗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의 희망의 씨앗들이 모이면
분명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떠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남과 동시에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 불은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줄 수도 있고
또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불빛이 되어줄 수도 있으며
그 불로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먹거리도 해줄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불로 당신의 마음을 밝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그 불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잊어버렸습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그 불을 망각의 강에서 다시 가져와야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 깊숙히 그 불을 지펴야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꿈과 당신의 희망과 진정한 당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아직 마음 속에 지피지 못했기에
당신은 떠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는 그리고 당신에게는 인간의 의무가 있습니다.
외롭고 슬프고 우울하여 나를 괴롭히는 그 나를 이기지 못할 때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
그 손을 내미는 것은 인간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당신에게 진정으로 상처받은 손을 내밀 때
그 내민 손을 따뜻이 잡아주는 것도 인간의 의무입니다.

잊지마세요. 절대로.
세상 어딘가에는 당신의 상처받은 손을 꼬옥 잡아줄
따뜻한 손이 반드시 있습니다.




"떠나간 후배에게"

어린 후배 아이가 떠나고
남은 것은 한줌의 재
재가 바람에 묻어 떠나지 못하고
나뭇자락에 묻히는 모습
어머니가 아버지가 우시는 모습
길길이 눈속에 차 들어와
슬퍼 말 못하고 산자락만 쳐다보며
저 산이 삼신봉이지 저 산이 지리산이지
말 못한 슬픔들이 마음을 할퀴네
자락자락 기억이 있었던
나보다 더 많은 자락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한 아이가 한줌의 재로 떠나니
무어라 말하리 무어라 슬퍼하리
웃음띤 얼굴만 기억의 공간을 차지하는데
남은 시간의 공간 누가 기억하리
슬퍼서 말못하고 알아도 말못하고
10년 전의 지리산이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힘든 것은 여전하구나

아이야,
별이 되라
한줌의 재가 별이 되어
별이 되어 세상을 보아다오
네가 꿈꾸던 세상이 되게 밝게 비추어주지 않으렴
너의 외로움
너의 아픈 상처
너의 풀지 못한 마음
훌훌 털어버리고
지리산자락에 훌훌 털어버리고
별이 되어다오.
누군가 네게 아픈 손을 내밀때
너의 따뜻한 별빛으로 잡아주는
별이 되어다오


그 산자락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나뭇잎소리
바위들이 그릉그릉하는 소리
잊지않고 찾아갈테니
별이 되어다오
알았지?

하늘의 별이 되어다오.




 

 

 

2006/06/01 18:2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