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파는 사람"
젊어서는 몸을 팔았으나
나도 쓸데없이 나이를 먹은데다
근력 또한 보잘것 없었으므로
요즘은 시를 내다 판다
그런데 내 시라는 게 또 촌스러워서
일년에 열 편쯤 팔면 잘 판다
그것도 더러는 외상이어서
아내는 공공근로나 다니는 게 낫다고 하지만
사람이란 저마다 품격이 있는 법.
이 장사에도 때로는 유행이 있어
요즘은 절간 이야기나 물푸레나무 혹은
하늘의 별을 섞어내기도 하는데
어떤 날은 서울에서 주문이 오기도 한다
보통은 시골보다 값을 조금 더 쳐주긴 해도
말이 그렇지 떼이기 일쑤다
그래도 그것으로 나는 자동차의 기름도 사고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기도 하는데
가끔 장부를 펴놓고 수지를 따져보는 날이면
세상이 허술한 게 고마워서 혼자 웃기도 한다
사람들은 내 시의 원가가 만만찮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우주에서 원료를 그냥 퍼다 쓰기 때문에
팔면 파는 대로 남는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시 파는 집 간판을 내리지 않을 작정이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이상국[창비]
우린 어쩌면 詩가 너무 대단하여 접근하기조차 힘든 경지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건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글이 어떤 위치에서 생산되었으며
어떠한 역할을 위해 재창조의 과정을 겪었는가를 알게 되고 누가 그 글을 누구를 위해 썼는가를
알게 되면 그러한 경향은 당연히 사라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기까지의 과정은 참으로 길고 긴
배움과 인식의 재인식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러한 기나긴 과정의 가시밭길을 가지않아도 되게끔
이 한편의 詩는 소탈하게 보여준다.
詩의 원가는 팔면 파는 대로 남는다.
대신 많이는 안남는다.
'두런두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Almond tease, 영어강사인 그녀를 구하자!!! (0) | 2006.12.01 |
---|---|
포르노에 출연한 학원강사 기사를 접하며 (0) | 2006.11.30 |
pd수첩 특집을 보면서 (0) | 2006.11.08 |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0) | 2006.11.07 |
시월의 마지막 날 (0) | 2006.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