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

"시 파는 사람"

황새울 2006. 11. 29. 11:49

 

"시 파는 사람"

 

 

젊어서는 몸을 팔았으나

나도 쓸데없이 나이를 먹은데다

근력 또한 보잘것 없었으므로

요즘은 시를 내다 판다

그런데 내 시라는 게 또 촌스러워서

일년에 열 편쯤 팔면 잘 판다

그것도 더러는 외상이어서

아내는 공공근로나 다니는 게 낫다고 하지만

사람이란 저마다 품격이 있는 법.

이 장사에도 때로는 유행이 있어

요즘은 절간 이야기나 물푸레나무 혹은

하늘의 별을 섞어내기도 하는데

어떤 날은 서울에서 주문이 오기도 한다

보통은 시골보다 값을 조금 더 쳐주긴 해도

말이 그렇지 떼이기 일쑤다

그래도 그것으로 나는 자동차의 기름도 사고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기도 하는데

가끔 장부를 펴놓고 수지를 따져보는 날이면

세상이 허술한 게 고마워서 혼자 웃기도 한다

사람들은 내 시의 원가가 만만찮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우주에서 원료를 그냥 퍼다 쓰기 때문에

팔면 파는 대로 남는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시 파는 집 간판을 내리지 않을 작정이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이상국[창비]

 

 

 

우린 어쩌면 詩가 너무 대단하여 접근하기조차 힘든 경지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건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글이 어떤 위치에서 생산되었으며

어떠한 역할을 위해 재창조의 과정을 겪었는가를 알게 되고 누가 그 글을 누구를 위해 썼는가를

알게 되면 그러한 경향은 당연히 사라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기까지의 과정은 참으로 길고 긴

배움과 인식의 재인식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러한 기나긴 과정의 가시밭길을 가지않아도 되게끔

이 한편의 詩는 소탈하게 보여준다.

 

詩의 원가는 팔면 파는 대로 남는다.

대신 많이는 안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