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6.11

황새울 2006. 7. 4. 17:40

일요일 오후 느지막하게 도서관에 동생들이랑 책을 빌리러 갔었다.
요즘 동생들이랑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라는 책을 읽고 있다.
다 읽고 나면 그 책에 대해 얘기해보자고 했는데
1권까지 다 읽게 되면 1권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생각중이다.

도서관에 들어서서 벤치에 앉아 동생들과 함께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데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어보이는 한 여자 아이가 공중전화박스와 벤치를 왔다갔다 한다.
얼굴에는 무슨 일이 있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거의 울상이 되어서 공중전화박스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벤치에 있는 물건들을 들었다가 도서관 문밖을 나서다
그러길 몇번 반복한다.

가만히 아이의 모습을 관찰해본다.
분명 혼자 오지는 않았을테고 누군가 도서관에 데려다줬을 텐데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못만난거 같기도 하고
학원차를 놓친거 같기도 하고
하여튼 정확한 점은 아이가 전화를 어딘가 하면 해결될 거 같았다.
아이가 전화박스를 들락날락하는 걸 봐서는 전화비가 없거나
수신자부담 서비스의 사용법을 모르는게 틀림없어 보였다.
사실 공중전화박스에 붙여진 수신자부담 서비스의 사용법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는 그 사용법을 보기가 힘들게 붙여져 있었다.
전화기 위 전화박스 벽면에 붙여져 있으니 아이들 키에 버튼도 겨우 누를텐데
그 사용법을 눈으로 확인해가면서 익히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나 긴급버튼을 먼저 눌러야한다는 점은.

넌지시 여동생에게 얘기해준다.
아이에게 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라고
그리고 전화기를 빌려주라고.
여동생은 선뜻 나서지않는다.
그 사이 아이는 한번 더 전화박스안에 들어갔다 나오고
아이의 눈을 보니 곧 울음이 터질것 같았다.
이내 여동생에게 다시 한번 얘기해준다.
조금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서.
여동생이 그 아이에게 다가가 얘기를 나누고
얼마지 않아 울먹이기 시작한다.
아이는 울먹이면서 휴대폰을 누르기 시작하고
이내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디엔가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얼마지 않아

"닌, 다 큰게 그렇게 울고 있노"

하면서 아이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자
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겨 엉엉거리며 운다.
그렇게 작은 문제 하나가 해결되었다.

여동생에게

"저 아빠가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네게 와서 고맙다고 할거다.
하지만 생각이 없다면 그냥 갈거야"

라고 얘기해준다.
그 아이의 아빠는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우리를 지나친다.

사실 어떻게 보면 아무일도 아니다.
아이는 아버지와 도서관에 왔다가 잠시 엇갈려서
도서관 벤치에서 당황해 울먹이고 있었던거고
그 아이의 아버지는 당연히 아이가 도서관 어디엔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작은 것에서 늘상 큰 문제로 번져간다.
보통 어린 아이들은 당황하기 시작하면 순간적인 충격에 의해 기억을 잃어버린다. 그 시점이 당황하다가 울음이 터지기 시작하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집이고 부모의 이름이고 자신의 이름도 잊어버리는 것이다.
특히나 낯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공포심까지 느끼게 된다.
그렇게 하여 누군가에 의해 경찰들이 오고 경찰들은 아이의 부모를 수소문하다 못찾으면 경찰서로 아이를 데리고 가고 그 와중에 아이는 더더욱 공포를 느끼고 당황하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미아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웃기는 건 미아발생시 돈을 버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 한명당 얼마씩 정부 보조금이 나오기때문에
이걸 악용하여 아이를 고아 아닌 고아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현재 south korea에서 완료되었다는 미아 데이터베이스라는 걸 보면
얼마나 우스운일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뭐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조금만 관심있게 누군가 봐주었다면
그 아이는 벌써 아빠를 찾아서 십여분동안의 당황과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 도서관 벤치에서 그 아이를 유심히 봐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아이가 울기 시작해서야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본다.
아! 옆 벤치의 한가족의 어머니가 관심을 보였었다. 그 또래의 아이를 가진.

사실 세상의 여러 문제들은 조금의 관심으로 해결되는 문제들이 반정도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러한 관심이 점점 탈색되어간다.

어느 누구나 자기가 정당하고 좋은 일을 했는 것 같다고 생각되어지면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싶어한다. 즉 타자에 의한 확신.
그런 의미에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아낄 필요가 없다.
괜히 그런 말을 할 거 같으면 부끄럽다거나 자존심 상한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이야말로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예전에 늦은 밤에 술한잔 걸치고 시내버스를 타고 오는데
버스 안에 클래식이 은은히 들리는 것이 아니든가.
버스 기사분이 라디오를 틀어놓았는데
사실 버스에서 클래식 듣기는 참 힘들다.
그날은 기분도 그렇고 술도 한잔 했는터라
그 음악이 참 와닿았다.
기사분에게 "고맙다"라고 말해야겠다 싶어
내리기 전 한코스 앞에서 그에게 다가가

"음악 들려줘서 고맙습니다"

라고 했더니 잘 못 알아듣고 다시 되물어보기에
다시 한번 얘기해줬었다.
그랬더니

"아~ 예"

라고 답한다.
사실 나같이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여튼 그날 그 버스안의 클래식은 참으로 많이 와닿았다.
아쉽게도 제목도 모르고...
언젠가 다시 들을 또 그런 날이 있겠지.




 

2006/06/12 01: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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