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고기제조업일지]가스가 떨어지다.

황새울 2006. 7. 5. 19:31


고기 제조업에 뛰어던지 어언 이주정도 됐다.
어제의 음주가무로 인해 느지막히-그것도 어마마마의 호통속에서도 꿋꿋이 버텨- 일어나 고기 cnc에 도착했을 때가 2시다.
사거리의 풍경은 '시시각각' 이 말로 충분할터.
오늘은 꼬마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너무 작은 그녀에게 신은 너무 많은 무게를 내렸는지 모른다.
그녀의 눈속엔 그 무게가 고스란히 있다.
그 무게를 힘겨웁게 버티는 그녀가 안스럽다.
하지만 그녀의 눈속에서 테레사 수녀의 눈빛을 만났다.
세상은 그녀를 깔보며 그녀를 힘겨웁게 만들지만 그녀가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면 그녀는 위대한 성인이 되리라.
앰블런스가 소리를 꽥꽥지르며 다니고-단속반이 나왔는 줄 알고 화들짝 놀래며- 신호동 교체작업을 하느라 교체팀들이 나와 신호등을 바꾸고-작업차량이 아주 진귀했는데 카메라가 없어서 못찍었다...아쉬운거...쩝-사람들은 시시각각 바뀌고 그렇게 사거리의 풍경은 시시각각이다.
얼마남지 않은 고기재료로 조금 고민하다 '마자 다 팔자'라는 생각에 열나게 cnc를 돌리는데 가스가 똑하니 떨어지는게 아닌가!
공중전화박스로 달려 가스집에 전화하고 돌아왔을 때 이미 고기들은 김빠진 풍선마냥 힘이 하나도 없다. 안절부절하다가 이건 나의 손을 넘어섰다라는 생각에 편안히 기다린다. 김빠진 풍선이 되어버린 고기들은 내가 묵어야지라며.
예전에 왔던 가스 아저씨를 기대했지만 다른 이가 왔다. 예전에 왔던 가스 아저씨가 재미있었는데...사람의 냄새가 났거던.
그렇게 김빠진 고기를 cnc에서 들어낼때 마음이 미어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인생의 길도 있는 것을.
마음을 달랜다.
그렇게 하루가 갔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주로
어서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하나 더 넣어 드렸어요.
라는 말들로 채워진.
그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선량하고 법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일은 어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까?
내일은 어떤 시시각각이 일어날까?
내일은 단속반이 나와 못볼 꼴을 보게 될까?
내일은 그렇게 미지수이자 변수의 숫자이다.
어쩌면 인생은 그 미지수와 변수의 숫자 속에 둘러쌓인 나인지도 모른다.



05.10.24


 

 

 

 

2005/10/25 22:28:10